제72집: 책임자가 되려면 1974년 07월 14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310 Search Speeches

내적인 책임자가 가" 길-" 반"시 영적인 '조가 있다

이렇게 볼 때에 공적인 입장에 선 책임자는 자기라는 것을 강조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밥을 먹으나 행동을 하나 보나 들으나 모든 것을 전체의 기준과 맞춰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여기 수련소에서 수련받는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와 같은 책임자가 되기 위해서 수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것을 어떻게 잃어버리느냐? 과거에는 자기라는 관념이 있었어요, 자기라는 관념이. 성격이 강한 사람은 이것을 전부 다 깎아 버려야 된다 이겁니다. 또 성격이 뾰족한 사람은 둔하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책임자가 되어서 '나는 여덟 시간은 자야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립이 안 된다 이거예요. 또 책임자가 '나는 하루에 밥을 세끼는 꼭 먹어야 되는 책임자다'고 한다면 그것도 성립이 안 됩니다. 또 책임자가 '나는 누구와 같이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면 그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을 수 없다 이거예요.

앞으로 여러분이 책임자가 되어 가지고 대중 앞에 나타나든가 혹은 책임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하고 전체를 대해 보라는 거예요. 거기에는 반드시 지장이 온다 이거예요. 반드시 지장이 오더라 이거예요. 적당하게 하면 인간 세계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영적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영적인 세계가 여기에 개재해 가지고 협조해 주면 그 사람이 자연히 싫어지는 거예요. 싫어진다구요.

결국은 어떠한 대중 앞에 나타나거나 자기가 책임을 진 것에 대해 안심하고 편안한 자리에 있는 책임자에게는 영적인 세계에서 절대 협조를 안 하더라 이거예요. 마음이 초조하고 걱정스럽고, 이 문제에 내 생사가 달린 것으로 알고 생명에 치명적인 자극을 줄 수 있고 위협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서 하늘 앞에 겸손히 나설 때에만 하늘이 협조한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생활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는 거와 같이 다하는 마음, 마음을 다하는 데에서만이 모든 영적인 협조의 기준이 연결되더라 이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세상의 책임자면 그 책임자를 중심삼고 볼 때에, 만약에 휘하에 백 명을 거느리고 있는 책임자라면 그 책임자는 백 명 가운데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 이겁니다. 불쌍한 사람이라구요. 천 사람을 거느리고 있는 책임자라면 그 책임자는 천 사람 가운데서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책임자는 짐을 벗을 수 없습니다. 짐을 벗을 수 없다구요.

그러한 입장에 서서 나가는 내적인 책임자가 가는 길에는 반드시 영적인 협조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책임자의 생활은 누구보다도 신앙적인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절박한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서 나서는 책임자라면 자신을 갖고 나서기에 앞서서 전부를 나의 협조자로 만들고 전부가 나의 위로자가 되기를 바라고, 전부를 위하는 입장에서 책임자로 나서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믿어 주지 않지만 너는 믿어 다오. 너는 믿어 주면 좋겠다' 하는 마음, 누구보다도 신앙적이고 누구보다도 위할 수 있는 마음, 누구보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이것이 언제나 책임자의 모든 소행, 영적인 책임자를 지탱시키는 하나의 원칙이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내가 믿는 만큼 상대적 가치를 찾을 수 없고, 위하는 것도 상대적 가치를 찾을 수 없고, 사랑하는 것도 상대적 가치를 찾을 수 없지만, 너만은 혹은 자연만은 혹은 미물만은 알아줄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마음, 조그마한 그 무엇이라도 믿고 의지하고 위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나서는 곳에는 반드시 하늘이 역사하는 것을 우리는 생활을 통해서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경(心境)을 우리가 분석해 볼 때, 그 자리가 가장 약한 자리가 아니냐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 목적은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예요? 자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때문에 그런 자리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계는 반드시 크고 강한 것으로 활동할 수 있더라 하는 것을 여러분이 영적 생활을 해보면 틀림없이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를 거쳐 나가는 책임자의 길에는 가면 갈수록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적인 세계의 협조로 말미암아 환경이 불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린애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한 것도 예수님이 가장 중요한 책임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믿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을 때에 '너희만은 나를, 내 말을 이해하고 알아줄 것이다' 하는 기대를 갖고 천국에 가깝다고 하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의 대표자로 말할 수 있었다는 것도 우리는 그러한 심정적 세계에서 체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그렇다구요. '나는 누구 누구의 책임자입니다. 나는 아무데 아무데의 책임자입니다' 하는 기도는 성립이 안 된다 이거예요. 결국은 어린애와 같은 입장에 서 가지고 자기는 없고 하늘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외적인 세계의 책임자는 명령하는 것이 일쑤입니다. 지시하는 것이 일쑤다 이거예요. 그러나 내적인 세계의 책임자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얼마나 명령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더라 하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