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집: 선악의 분기점 1970년 08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0 Search Speeches

세계를 위하" 통일교회가 되라

성인은 세계를 위하는 도리를 가르쳐 줍니다. 성인치고 자기 나라만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도리를 가르치는 성인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인이 아니라 위인입니다. 대한민국의 충신 이순신 장군이 미국에서도 충신입니까? 일본에서도 충신이예요? 일본에서는 원수입니다. 대한민국에 서만 충신이고 위인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인은 대한민국에서도 충신 이상으로 모시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충신 이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국가를 초월해서 충신 이상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틀림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것은 그들이 하늘의 도리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며, 하늘을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자기 민족 위주가 아니라 세계적인 것입니다. 국가 초월의 사상을 근원으로 하는 도리를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의 내용을 품고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갈보리 산상에서 그 민족에 의해 형편없이 죽었습니다. 그가 사랑했던 제자들까지도 그를 배반했습니다. 죽겠으면 죽고 말겠으면 말고 너 할대로 하라는 식으로 예수님을 버리고 갔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어떻게 오늘날 이 민주세계를 움직이는 기독교 사상권을 만들어 놨느냐? 예수님은 그때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서 하나님과 세계 인류를 위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인류는 시시하게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세계 인류가 아닙니다. 미래의 인류, 인간이 찾아갈 수 있는 소망의 인류인 것입니다. 맞아요, 틀려요? 성인은 자기 나라를 위주로 하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피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유대 사람으로서였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4천년 동안 수고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 만들어 가지고 한 나라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 나라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는 뜻에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없어지더라도 세계를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통일교회도 통일교회를 위주한 통일교회이어서는 안 됩니다. 세계를 위주한 통일교회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도 대한민국만을 위주로 하면 언젠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세계를 위한 대한민국이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전체를 위하여서는 무한한 가치로서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 삼천만 민족에게 벽돌집이나 양옥집도 지어 주고, 차도 한 대씩 사주고, 자기가 해주고 싶은대로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예요. 그런 마음 있어요, 없어요? 그런 마음 바꿀 수 있어요. 양심 있는 사람은 돈이 생기는 대로 먼저 그런 일을 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양심은 환갑 잔치날을 맞았으니 이제부터는 집에서 잘 먹고 잘 차리고 살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마음은 폭군 중에 최고의 폭군 같습니다. 그러나 무한한 인격을 갖추고 영원한 천륜의 심정의 세계, 선주권의 그 세계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그래야 되겠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폭군과 같이 대하는 겁니다. 이것이 나쁜 거예요, 고마운 거예요? 고마운 것이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도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그러면 무슨 주의냐? 천주주의입니다. 천주주의는 민주주의 할 때의 주인 주(主)자가 아닙니다. 집 주(宙)자입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에 살 수 있습니까? 살 수 없습니다. 이 나라는 천주(天宙), 즉 하나님의 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못 되어서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집을 떠나서 야단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떠난 집은 상가와 마찬가지입니다. 또, 과부나 홀아비의 입장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집이 아무리 으리으리하다 해도 그것은 미완성이요, 반쪽입니다. 그 집이 아무리 좋다 해도 그것은 자랑할 것이 못 됩니다. 집에는 주인을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주인이 있느냐 할 때, 마음의 주인이 있는 것 같지요? 마음의 주인이 없으면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동으로 갈 지 서로 갈 지 알아요? 그렇지만 본심은 알거든요. 그러니 주인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여기에서 사는 것은 천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제한된 이 하루권내에서 사니까 잘 모르지만, 여러분은 천년 만년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천년 만년을 위해서 살면, 그 천년 만년이 그를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그러한 가치가 있느냐 할 때, 천만에요.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왜냐? 여러분이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