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4집: 어떻게 나라를 하나로 묵고 축복을 세계화 하느냐 1998년 06월 14일, 미국 이스트가든 Page #137 Search Speeches

체휼의 생활을 해야

그러니 얼마나 무서운 생활이에요? 얼마나 엄청난 생활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 순간이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긴장된 순간의 생활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시간이 얼마나 촉박해요? 근심하고 놀고 불평하고 싸우는 것이 얼마나 우스워요? 이러다 보면 천하를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무한한 세계를 뚝뚝 잘라서 뭐라 할까, 개에게 던져 주는 거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알게 될 때, 우리의 생활에서 그런 전통적 내용의 하나의 공식적 형태가, 무한한 공식이 전체에 연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건 뭐냐? 1밀리미터는 1센티미터에 통한다, 1센티미터는 1미터에 통한다, 이렇게 된다구요. 1미터는 1천 미터, 1만 미터에 통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입니다. 어차피 그런 식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의 단위가 되어서 도는 것입니다. 1센티미터는 하나의 단위입니다. 그 다음에 10센티미터 하나를 중심삼고 척도의 기준이 되고, 1백 센티미터, 1만 센티미터가 그와 같은 중요한 기본적 책정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생활이 오늘날 육신생활에 지워진 우리의 책임이다 그거예요. 이건 중요합니다.

그 책임을 무엇으로 연결시키느냐? 심정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문제입니다. '진짜 아들딸이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아들딸은 체휼을 해야 됩니다. 먼 데 있는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느냐 하는 것을 내가 체휼해야 됩니다. 전파가 같다면 아무리 멀더라도 주파수만 맞추면 여기에 들어오지요? 딱 그렇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게 되면, 아들로서 언제나 부모를 생각해야 되고, 부모도 아들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파수가, 텔레파시가 맞게 되면 '찍―' 하고 울려난다는 것입니다. 체휼의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간이 얼마나 귀한 인생살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잊어버리면 다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이 땅 위에서 살던, 뭐라 할까, 주된 의식구조, 의식을 통한 습관성, 이게 문제라구요.

그러면 의식을 통한 습관은 무슨 습관이냐? 하나님을 대하는 심정세계, 자녀의 심정, 가정의 심정, 국가의 심정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본궤도의 도리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는 자녀를 찾고, 가정을 찾고, 종족을 찾고, 민족을 찾고, 국가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편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 길 외의 길은 없습니다. 그 가외는 뭐라 할까, 잎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지가 못 됩니다. 줄기가 못 돼요.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관심을 갖는 국가에 소속한 단체가 있고 기관들이 있지만, 그것들이 전부 다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필요한 것은 심정의 기관입니다. 타락한 세계에서, 지상세계에서 어떻게 본연의 심정을 남겨 놓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 개인에서, 가정에서, 종족에서, 국가에서, 세계에서, 하늘땅에서 어떻게 남겨 놓느냐 이거예요.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환경에서 그러한 내심적, 내정적, 사정적인 내용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을 가서 모셔 올 수 있어야 됩니다. 거기까지 가서 말이에요. 지금 하나님의 주위를 보면 상대가 아무도 없다구요. 지상에 있던 아들딸이니 가정이니 전부 다 없습니다. 무(無)입니다. 그래서 구원섭리의 도리를 통해 가지고 기독교가 나온 것입니다. 주류 종교입니다. 거기서 핏줄을 맑혀 가지고 예수가 와서 심정의 형태를 이으려고 했지만 다 실패했습니다.

그러한 전통적 내용이 이루어져야 했는데 다 실패했다구요. 참부모를 통해서 비로소 개인 완성, 가정 완성, 국가 완성, 세계 완성, 천주 완성, 그래 가지고 하나님이 소원한 자유 궤도를 만들어 가지고 해방하는 것입니다. 해방하는 데는 혼자 해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해방하는 데는 참부모가 와서 해방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