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통일식구의 사명 1971년 02월 16일, 한국 성동교회 Page #220 Search Speeches

예수님은 죽으러 오시지 않았다

그러면 그게 어떤 내용인가 한번 들어 볼래요? 바쁜 사람들은 가도 괜찮습니다. 듣기 싫은 사람은 가도 괜찮습니다. 그건 자유이니까. 말씀 중에 기분 나쁘게 나가지 말고….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죽으러 이 땅에 오셨다. 내 죄를 위해서 신랑되시는 주님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가지고, 나를 대신하여 제물로 바쳐져 가지고 나를 구원해 주신 것이다. 그렇게 피를 흘리심으로 인하여 내 죄를 대속해 주셨다' 하며 예수님을 대속(代贖) 의 주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예수님은 잘 죽었어요, 못 죽었어요? 잘 죽었다는 것입니다. 보혈을 많이 흘리는 것이 좋아요, 조금 흘리는 것이 좋아요?「많이 흘리는 게 좋아요」(웃음) 웃을 게 아니예요. 그러면 보혈을 흘리는데 있어서 이왕에 죽을 바에는 만민을 위해서 한꺼번에 보혈을 많이 흘리는 것이 좋아요?(웃음) 그게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웃어 넘길 게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는 데 있어서 비참하게 죽은 사람하고 덜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있을 때 어떤 사람에게 더 동정이 가겠습니까? 비참하게 죽은 사람에게 더 동정이 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똑같이 죽었다 하더라도 총 한방 맞고 죽은 사람보다 비참하게 피를 많이 흘리고 죽은 사람이 더 동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게 된다면 이왕지사 우리들을 위해서 피를 많이 흘리고 죽으면 그게 더 좋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보혈을 한꺼번에 많이 쏟고 죽기를 원했어요? 어때요? 가만히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이 보혈을 흘렸어요? 그러면 나는 진정으로 예수님이 죽기를 원했을까요? 이런 것을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님은 신랑이신데 신랑된 그 분이 나를 위해 죽겠다고 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있어요? 신랑인 예수님 시대에 살던 사람들도 신랑된 예수가 죽는다는데 왜 가만히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수님이 신랑인 줄 알았어요, 몰랐어요? 몰랐다는 것입니다. 몰랐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아직까지도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람의 손을 통해서 죽게 하려고 하였다면 가룟유다가 죽이게 하기 전에 예수님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맞아 죽었어야 했습니다. 제사장은 자기가 제물이 되는 입장이므로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가 예수님을 잡아죽여야 되는 거예요. 안 그래요?

예수님은 죽기 위해서 이 땅 위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여기 기성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내리세요. 지금까지 문선생 말씀을 들어 보니 예수님이 불쌍하지요?

거 뭐하러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이끌어내 가지고 살게 했습니까? 그것은 오실 주님 때문에, 주님을 위해 이스라엘 민족이 울타리가 되어 가지고 주님에게 총알이 날아오면 대신 맞아 죽고, 주님이 내몰리면 대신 몰리고, 로마 제국이 주님에게 달려들면 대신 대적하여 싸워줄 수 있게 하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울타리가 되어 주고, 철옹성 같은 궁성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신랑으로 오실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만년 공사를 세계적으로 준비시키려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이끌어내셨던 것이지 오실 주님을 죽이라고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