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집: 심정과 절대적인 신앙 1970년 08월 09일, 한국 부산 동명장여관 Page #89 Search Speeches

통일교회가 타 교회와 다른 점

우리 통일교회가 세상과 다른 것이 뭐냐? 세상보다 더 귀하고 가치있는 사랑을 입체적으로 퍼부을 수 있는 인연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하는 남편이 문제가 아니고, 또는 아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진짜 사랑하는 마음을 얼마나 지니고 있었고 선생님의 사랑을 얼마나 느껴 봤느냐? 그거 생각해 봤어요? 그것은 오늘날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이성적인 사랑은 그림자 같은 사랑입니다. 주체적인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리워하다가도 또 그리운 경지, 이런 경지를 알겠어요? 죽자 살자 좋아하는 그런 자리에서도 또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랑은 무한히 주는 사랑입니다. 부딪치고 또 부딪쳐도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부딪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아 죽겠다고 계속 파고들어가는 그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완성의 경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주의 본원적인 하나님의 사랑, 세계주의적인 사랑, 그 하나님의 사랑이 타락 이후 오늘날까지 살아 나오는 인간 개개인에게 찾아 들어가 절충 되었다면 영원한 한날을 중심삼고 올라가도 사랑이요, 떨어져도 사랑이요, 자빠져도 사랑이다 할 수 있는 경지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그 경지에서는 인격의 귀함이 어디에 있을 것이냐? 그 사람은 말을 잘해서 좋다거나, 그 사람의 눈이 비둘기 눈 같아서 좋다거나 하는 것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보아도 잘못된 것이 없다는 거예요. 그와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은 전부 향수 냄새가 난다는 거예요. 그래야 될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전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때에 하나님의 분신이요, 하나님과 인연되어 있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는 그런 심정을 가지고 보면 전부다 친구인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적 인연을 중심삼고 자녀의 입장에서 기도하면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영적인 안테나를 통해서 들어온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그러한 생활을 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여러분은 잠을 잘 때 아버지가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감촉을 느껴 봤어요? 아들딸을 사랑하며 그렇게 고이 키워 주는 느낌을 느껴 보았습니까? 그런 것을 느끼는 자리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인연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입체성과 신비적인 내용을 지닌 것입니다. 그런 느낌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어떤 자리에 가서 그런 것을 요구하는 사람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좋다는 것입니다. 꽃을 바라보면 꽃을 따라 아름다와지고, 꽃의 향취를 맡으면 모든 생리적인 감정이 동요되듯이 인간은 언제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사연을 중심삼고 인연을 맺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다 끊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계에서 그 작용을 대신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영계에서 그런 작용을 해주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것을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우리 통일교회가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사랑의 감정을 중심삼고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타교회와 다른 점입니다. 현재 전 영계가 선생님을 중심삼아 가지고 세계 도처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조건적으로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서는 안 됩니다. 환경권을 넘어서서 내가 태어난 것도 그분을 위해서 태어났고, 그로 말미암아 자랐다는 인식이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 심정을 체휼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인연된 근본 뿌리를 뽑아 버리고 다른 어디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느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완성을 향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지내 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어떤 때는 기도를 하려고 원리를 중심삼고 글을 적어서 놓고 보면 틀림없이 잘 쓰여져 있지만, 이것을 해서 뭘 할 것이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원리를 주고 뭘 바꿀 거예요? 원리는 전도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주체적인 입장에 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는 전도하기 위해 입을 열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그렇습니다. 제일 수준 높은 것을 체험할 때 제일 안타까운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봄절기면 봄절기 기분이 느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분을 느끼려면 체험 단계에 들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