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집: 역사와 나 1975년 09월 21일,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Page #292 Search Speeches

하나님은 현실을 극복하고 싸워 이기" 아""을 찾고 있어

이러한 논리로 보게 될 때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주님은 천군천사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세상을 전부 다 불심판하러 온다'고 하는데 이런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겁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오랜 역사 동안 많은 사람을 지옥에 보내 놓고 그런 일을 해요? 이론에 맞지 않는 거예요. 그런 하나님이면 당신은 잔인한 하나님이예요. 잔인한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예요. 왜? 아담 해와 때 전부 다 세워 놓고 심판해 가지고 한두 사람만 남기면 되지 왜 지옥에 많이 보내 가지고 끝날에 한꺼번에 전부 다 지옥 보내요? 그 얼마나 잔인한 하나님이예요? 인간들이 그것을 알기나 해요? 하나님은 다 알면서 모르는 인간들을 대해 가지고 전부 다 이렇게 망하게 만들어 놓고, 죄짓게 내버려 두고, 이제 와서 이러고 저러고…. 거 이론에 맞지 않는다구요. 그런 종교는 누가 믿을 수 없다구요.

하나님이 자기 편에 있는 사람들이 망하길 바라겠어요?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길 바라겠어요? 기독교가 요 모양 요 꼴이 되기를 바라겠어요? 앞으로 통일교회가 망하길 바라겠느냐 이거예요. 「아니요」 안 바란다구요. 유대교도 결국 망했다구요. 아무리 라바이 데이비스(Rabbi Davies)가 통일교회를 반대해도 그거 다 지나간 사람들이라구요. 기독교가 아무리 반대했댔자 그거 지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구요. 이미 그들은 망했다구요. 다 지나갔다구요. 그러면 통일교회는 지금 지나갔어요, 나왔어요, 나오기 시작했어요? 어느 자리에 있어요? 어떤 자리에 있나요, 우리가?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왜 이스라엘 민족이 저렇게 되었고, 기독교가 저렇게 되어 있느냐 하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섭리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시간성 과정에 있는 인간을 통해서 섭리의 역사가 엮어진다는 것을 확실히 모르고 막연하게 세상이 전부 다 허깨비 모양으로, 도깨비 춤추는 모양으로 될 줄 알았다 이거예요. 안 된다구요.

유대교도 비참하고 냉혹한 이 역사시대의 현실에서 승리하여야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고 기독교도 냉혹한 현실을 중심삼아 가지고 싸워서 승리하지 않고는 주님이고 무엇이고 만날 수도 없고, 뜻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데, 이것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의 현실을 주관하여 하나님편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중심적인 유대교가 되고 세계의 악을 지도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소화시켜 갈 수 있는 중심적인 기독교가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 앞에 설수 없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메시아를 맞을 수 없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서 그저 불수레를 타고 와서 세상을 전부 다 한꺼번에 때려 부수어서 자기들을 좋게 해달라는 말도 말라는 거예요. 기독교에는 이 세상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더 많다구요. 내가 영계에 들어가서다 알아보니까 그렇게 안 되어 있더라 이거예요. 영계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구요.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안 되어 있더라 이거예요. 그러니 현실에서 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끝까지 참아서 이기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끝까지 참아서 이기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구요. 끝까지 믿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했다구요.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어야 돼요, 믿는 자가. 정말 그래요?「예」 끝까지 참는다는 것은 싸우는 거예요. 언제나 일선에서 싸워 이기는 사람이예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여러분은 오늘날 역사시대에 있어서 유대교가 최후에 이방인 히틀러에게 6백만 명이 학살당한 비참한 사실을 알았고, 기독교가 앞으로 이렇게 나가다가는 공산당 앞에 6천만 이상 학살될 수 있는 위기일발의 이러한 현실을 바라볼 때에, 현시점에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여 가지고 이길 수 있는 참다운 아들딸을 하나님이 찾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다 이거예요.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이 현실 무대에서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세계적인 고난과 세계적인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아들딸을 하나님은 찾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찾고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게 아니냐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