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집: 심판의 목적 1966년 01월 0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6 Search Speeches

악한 세상을 책임져 오신 하나님

세상에 제아무리 잘나고 제아무리 세계를 호령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 자신 역시 악한 환경에 사로잡혀 살고 간 사람임에 틀림없고, 현재 제아무리 잘났다고 하는 사람도 악한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꿈을 갖고, 미래를 갖고, 세계를 호령한다 하더라도 역시 이 세계가 선한 세계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이러한 세상을 그냥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새로운 대책을 강구하셔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 세계를 그냥 그대로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선의 목적을 세우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세상을 그냥 그대로 두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한 세계를 선의 세계로 돌리려는 싸움이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섭리역사 과정에 그 싸움의 실증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선민사상이 나왔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범죄의 이 땅, 악한 이 세상을 가로막고 참된 개인을 세우고, 참된 가정을 세우고, 참된 종족을 세우고, 참된 민족을 세워 새로운 섭리의 이념을 중심삼고 이 악한 세상에 대치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 역사 과정에 있었다는 사실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것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선민사상이 역사상에 나타난 것을 보아서 '아 그런 분이 있는 것 같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민사상은 역사 이후에 생겨날 것이 아니라, 본래 역사 이전부터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악한 인간이 되고 악한 세계가 된 후에 생겨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선한 기준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야 선민이 될 수 있습니다. 악한 기준에 속해 있던 사람은 선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민사상은 역사 이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 이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선한 하나님이요,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역사 이후에 선민사상을 두었다면 그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선민사상은 역사 이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를 지나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선민사상은 이렇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선민사상에 의한 하나의 완성된 선민의 실체는 타락한 세계를 중심삼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본래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설정하신 창조의 목적을 완성한 자리에 있는 참된 사람, 즉 하나님이 영원히 취할 수 있고, 하나님만이 대하실 수 있는 참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참된 사람에 대한 기준은 인간이 타락된 이후, 악이 이루어진 이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락되기 이전부터, 악이 출발하기 이전부터 세워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한 세계를 만들어야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은 악한 세상이고, 악이 점령하고 있는 세상인데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선한 사람을 길러 낼 것이냐? 이 천지를 창조한 주인이 있다면 이것은 그분에게 중대한 과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길러 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이 땅을 대하여 섭리해 나오신 방향입니다. 그리고 이 선한 사람을 길러 내는 방편으로 세우신 것이 무엇이냐? 종교입니다 종교. 아시겠어요?

그래서 타락한 그날로부터 인간에게는 종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비록 인간이 타락했지만 인간의 본심 깊은 곳에는 종교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의 바탕, 즉 신앙을 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래 악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인간에게 선민의 기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할 수 있는 기준이 설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창조목적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본성은 언제나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지향하는 선의 목적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동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 우리 양심은 우리가 선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