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집: 인격과 사랑 1986년 04월 24일, 한국 춘천교회 Page #194 Search Speeches

인격자의 내적 기준

그래 선생님 오시라고 기도를 많이 했어요? 「예」 오늘 생각지도 않고 나도 모르게 강원도에 왔다구요. 딴 데 가려다가 강원도에 왔다구요.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지요? '선생님 가실 날이 가까와 오는데, 딴 도는 전부 다 모셨는데, 우리가 선생님을 한번 모시지도 못하고 가시게 되면 우리 강원도는 낙제된다'고 결사기도를 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지요? 선생님은 이상한 사람이 돼서 그렇게 하면 그런데를 찾아간다구요. 그래 우연히 어쩌다가 강원도에 왔습니다. 강원도에 와서 만나 보니 전부 다 통일교회에 들어온 지 오래된 사람들이구만. 사람은 어차피 영계에 가야 돼요. 영계를 아세요? 「예」 그 영계가 어디에 있어요? 그럼 영계가 어디서부터 연결돼요? 「……」 나이 많은 식구들 대해서 물어 보더라도 내가 선생이니 답변을 해야 되겠어요. 그 영계가 어디서부터 연결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요? 「……」

사람은 이중구조로 돼 있지요? 외적인 사람과 내적인 사람으로 돼 있습니다. 외적인 사람은 평면을 따라가려고 해요. 이 세상의 평면적인 면을 가려고 하고, 내적인 사람은 입체적인 면을 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평면적 기준을 맞출 줄 알아야 세상에 있어서 인격자라고 한다는 거예요. 동에 가면 동에 가서 거기의 자기 자리, 자기 위치를 지키고 기준을 맞출 줄 알고, 남에 가든지 혹은 서에 가든지 북에 가든지 자기의 위치를 맞춰 줄 줄 아는, 균형을 취해 줄 수 있는 사람이게 될 때 인격자다 하는 거라구요. 농촌에 가면 농민들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 도시에 가면 상인들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 그럴 수 있게 평면적인 면에서 균형을 취해 줄 수 있는, 모든 면을 갖춘 사람을 평면적 인격자, 곧 나타난 인격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나타난 인격자의 내적 기준이 뭐냐 하면, 우리에게 보이는 눈도 아니요, 코도 아니요, 입도 아니요, 귀도 아니요, 손발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은 반드시 마음의 기준을 중심삼고, 마음에 따라서 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느냐 하면, 평면기준 된 몸뚱이 기반 위에 수직적인 종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평면 대 종적인 인연을 중심삼고 연결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면 지상에서는 조화가 벌어지지 않는다구요. 하나님의 창조의 조화라든가, 기쁨이라든가, 행복이라든가, 비약이라든가, 폭발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충격적인 기쁨이라는 것은 평면 도상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것은 반드시 입체적인 내적인 충격을 받아야 돼요. 마음에 있어서 큰 충격을 받아 가지고 기쁨이 점점 진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먼저냐? 평면이 먼저냐, 수직이 먼저냐? 이것이 문제가 돼요. 보통 사람이 생각하게 될 때에는, 수직보다도 평면이 먼저라고 합니다. 수직은 모르는 거예요, 일반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거예요. 그 평면만 보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만 생각한다는 거예요. 사람이 태어나게 될 때는 세상에서 태어나게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하늘로부터, 수직적인 세계로부터 태어나게 됐습니다.

그러면 수직적인 세계, 수직관계의 인연을 맺는 데는 어떻게 돼야 맺느냐? 이것이 문제가 돼요. 수직관계에 있으려면 반드시 둘이 하나될 수 있는 기준이 설정돼야 됩니다.

그 기준이 도대체 뭐냐? 그것이 힘이 되느냐, 혹은 우리의 지혜가 되느냐, 지식이 되느냐, 혹은 권력이 되느냐? 오늘날 평면적인 인간들은 지식을 추구하고, 권력을 추구하고, 그다음에는 돈을 추구하고 그것이 전체인 양 보이고 있지만 그런 것들이 평면적 인격권내에서 입체적 인격 내용을 결속시키는 데 있어서는 아무런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거예요. 무엇만이 이것을 연결시킬 수 있느냐 할 때, 그것은 참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예」 참된 사랑에 의해 비로소 몸과 마음, 평면적 인격기준 앞에 종적인 인격기준이 연결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