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집: 우리의 책임 1969년 07월 2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39 Search Speeches

가인과 아벨은 책임분야" 다르나 서로 하나되어야

그러면 타락한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인연을 맺을 수 있느냐? 자기마음대로 통일교회에 찾아 들어오면 맺을 수 있느냐? 그것은 자기 개인이 인연 맺은 것이지 하나님이 맺어 준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았으면 자기의 책임을 완수해야 됩니다.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아담이 쫓겨난 그 자리에서부터 아담이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찾아 가지고 들어오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의 노정입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있는 곳에서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의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때는 언제든지 가정이면 가정, 종족이면 종족, 민족이면 민족의 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동은 왜 벌어졌느냐? 중심존재로 하여금 뜻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로 나가야 합니다. 야곱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으며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오늘날 선생님도 그렇게 해 나왔습니다.

요셉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요셉도 뜻을 이루기 위해 집을 떠나 애급으로 갔었습니다. 원래 요셉은 거기에서 뜻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왔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모가 그를 찾아 내려간 것입니다. 뜻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가나안 복귀노정이 생긴 것입니다. 부모가 찾아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전에 자식이 다시 돌아왔어야 되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뜻을 이루어 가지고 돌아 왔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 역시 그런 운명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아담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 가인은 어떠한 자리에 있어야 되느냐? 가인의 자리는 내보내져야 할 자리입니다. 그리고 아벨은 어떤 자리냐? 아벨은 부모의 슬하에 있어야 할 아들의 자리입니다. 그러면 이 아벨적인 존재와 가인적인 존재를 서로 결부시켜야 되는데 결부시키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복귀노정을 아벨이 먼저 가든가 가인이 먼저 가든가 해야 합니다. 가인은 자신의 사명과 아벨의 사명, 이 둘을 다해야 합니다. 즉 부모 앞에 효도도 하고 부모 대신 나가 싸우기도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을 세워서 한 아들로 하여금 효성의 도를 다하여 부모를 모시게 하고 한 아들로 하여금 밖에 나가 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효성을 하는 것은 천리의 원칙이나 싸우는 것은 천리의 원칙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가인은 아벨을 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책임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삼자 일치점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뭐 이렇고 저렇고 하는 사람은 그만큼 하나님과 먼 거리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리적 기준에서 모든 일을 행해야 됩니다. 그 기준에 대해서 뭐 어떻게 어떻고 하는 것은 선생님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타난 선생님, 즉 결과로 나타나 있는 선생님은 알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거쳐온 하늘과 관계된 선생님의 내적인 심정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 대해 뭐 어떻고 어떻고 하는 사람은 오래 가지 못 합니다. 그런 사람은 전부 다 사탄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것이 무엇이냐? 다른 여건을 중심삼고 비판한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위험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 아무리 잘해도 하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삶의 행동을 받아 주거나 거기에 상대해 주거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