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남은 무리에 참예하자 1958년 06월 2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57 Search Speeches

하나님과 예수님을 누구보다 " 사'해야

그러면 그 탄식은 무슨 탄식인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이념과 인연을 맺어야 할 아담과 해와가 타락으로 인하여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회복하여 하나님의 이념과 사랑과 인연을 맺기를 고대하는 탄식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탄식을 풀어주지 못하는 사람은 끝날의 심판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심판에서 남아질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는 하나님과 예수의 심정을 어느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또한 그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만 그 심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이념에 통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원수를 이 천지간에서 몰아낼 수 있는 힘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 상에서도 원수를 위하여 복을 빌어줄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심정이 그의 가슴속에서 언제나 강하게 용솟음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늠름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신랑과 신부라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러면 신랑과 신부는 무엇인가. 예수가 가신 후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더 사랑한 신부가 있었느냐 하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한 말을 하고 예수로 말미암은 역사를 이야기했으나 하나님의 창조의 이념을 인류 앞에 나타내지 못한 예수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의 심정을 체휼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심정과 나의 심정이 하나되어야만, 하나님의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끝날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자신 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하늘의 슬픔이 있다면 그 슬픔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땅 위에 남기시기 위하여 자신의 몸 이상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으나 제자들은 자기들을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정과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 사랑을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에 제대로 받아 감당하지 못하고, 땅 위에 그 사랑의 열매가 맺어지지 못한 것이 하늘의 슬픔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의 사랑의 심정을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느꼈으며 그때부터 예수님이 해주신 말씀의 의도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망하시며 찾으시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자신을 누구보다도 더 미워하고 버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 다녔습니다. 고로 끝날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미워하고 버리면서라도 사랑의 마음을 갖고 하늘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께서 오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주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역사노정에서 하늘이 겪은 슬픔의 고개를 넘어야 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던 어려움의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섭리역사의 기간을 단축시키고 시공을 초월하여 2천년전 예수님이 품으셨던 쓰라린 심정을 체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돌아가신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 사람은 비록 인간들이 보기에는 미약한 존재였던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이 고을에서 쫓기고 저 고을에서 비난받고, 가는 곳곳에서 조소를 일신에 받고 다니던 총각 예수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따르던 마리아였습니다. 이런 간곡한 마리아 앞에 예수는 부활의 몸으로써 나타났으니 이는 끝날에 전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갈길을 보여 준 표상인 것입니다.

그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생활을 했던가? 예수를 사랑하기에 입을 것 먹을 것 전부를 잊어버리고 일편단심 그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생사를 초월하고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따르던 그녀의 행로는 끝날의 성도들이 걸어야 할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지금도 이 땅 위에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심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을진대는 그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에 어린 눈물이 감돌 것이요, 하늘 앞에 무한히 빚진 자신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몸을 불사르더라도 받은 사랑에 대해 보답할 길이 없음을 알 것이요, 죽음의 길로 가야 할 자신임을 알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여러분은 어느 한때라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라면 창조시대부터 과거·현재·미래를 통하여 전체를 다 버리고 찾아주시는 하늘의 심정을 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하늘 앞에 얼굴을 못들 것이니 그것은 하늘 앞에 무한히 빚진 자신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심정을 느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늘만을 따르는 사람이라야 끝날에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편안한 것을 바라는 사람은 예수의 심부름꾼은 될지언정 그의 친구는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어도 그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친구는 될지언정 그의 신부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바라고 예수가 바라는 것은 심부름꾼도 아니요 친구도 아니요 신부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