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집: 우리의 사명 1970년 03월 11일, 한국 통일산업 (구리시 수택리) Page #263 Search Speeches

복귀섭리의 완성 기준

그건 왜 그러냐 하면 개인보다 큰 기반을 갖고 있는 사탄의 세력이 개인과 접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개인보다 더 큰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벨을 찾기 위해서도 두 배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했고, 노아를 세우기 위해서도 국가권 앞에서 그 모든 환경을 타개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위의 기반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것을 닦기 위해서 120년의 기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개인을 구하기 위해서는 개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과 연결되어 있는 환경을 어떻게 타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야곱 때나, 모세 때나, 예수님 때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개인을 구한다는 입장을 두고 볼 때, 반드시 사탄권을 타개하고 사탄을 굴복시키지 않으면 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 자체보다도 더 큰 시련의 대가, 탕감의 대가, 희생의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의 사명의 기준은 어디에 있느냐? 개인복귀라는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는 개인보다 큰 탕감의 대가를 치러야 할 사명이 있고, 가정을 중심삼고 볼 때에도 그렇습니다. 나아가 천주복귀란 이 엄청난 타이틀을 내걸고도 그 이상의 기준을 중심삼아 가지고 복귀할 수 있는 주체적인 능동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검(劍)으로 어떤 물건을 자르려면 그 검이 물건보다 강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 물건을 자를 수 없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복귀섭리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나타나는 모든 상대적인 여건을 타개할 수 있는 주체적인 능동성을 지녀야 됩니다. 즉, 강한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자체를 상대가 치게 될 때, 그 자체가 부서지지 않고 여기에서 상대적 존재를 부숴 버릴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복귀섭리의 완성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개인의 문제를 타개하는 데에도 역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요, 가정이나 종족과 민족을 중심삼고도 그러한 것입니다. 또한 국가와 세계를 중심삼고서도 그와 같은 싸움의 환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그 싸움은 오늘날 인간세계의 싸움과는 다릅니다. 먼저 무형세계의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유형세계의 사탄과 싸워서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탄을 굴복시키고서야 실체적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전선에서 싸움을 치르고 나가야 할 사명을 짊어진 우리의 입장이 일방적인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평면적인 입장에서 입체적인 입장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먼저 어떻게 되는지 영계와 육계를 중심삼은 그 양면세계의 길을 타개하여 그 목적을 향해서 직선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계에서 주체적인 입장에 서 가지고 이 지상의 여러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미 영계에서 승리적 기준을 가진 주체로 서 있다 하더라도 육계를 대표한 인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육계의 문제를 타개하는 행로를 가리지 않으면 지상에서 승리의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귀섭리 과정이 어떻다는 것을 배워서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타락한 인간으로서 이 양면의 세계를 어떻게 타개해 나가느냐? 하나님도 실체적인 육계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 6천년 역사를 거쳐오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같이 주체적인 입장에 선 것도 아니고 타락권내에 포위되어 있는데, 우리 자체로서 어떻게 이 양면의 싸움을 완결시키느냐? 이것은 지극히 엄청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