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집: 모시고 싶은 아버지 1961년 02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9 Search Speeches

진정한 모심의 자세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찾아온 것은 영광 가운데 공중에 들려 올라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늘 보좌에서 수많은 천군천사를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런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도탄 중에서 환란과 더불어 싸우고 고통과 더불어 지내시는 그 아버지를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공평한 분이라면 누구를 축복할 것이뇨? 그러한 자를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아버지를 참으로 모시고 싶다 할진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여러분이 잘산다고 해서 잘사는 환경에서 모셔 주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백만장자와 같은 호화스러운 생활 가운데에서 모셔 주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디서부터 모셔 주기를 바라시느냐? 제일 비참한 자리에서부터 모셔 주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운명하기 직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셨지만,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만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의 자리를 넘어서 만나려고 하셨습니다. 왜? 사망선까지 사탄이 침범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망선상을 넘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아버지와 상봉하려면 인간들이 피해 가는 그런 고통 이상의 자리에서 하늘을 모셔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내가 위로받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아버지를 위로해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내 소원을 위해서 아버지를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나의 소원을 들어 주시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해야 합니다. 아버지를 만나면 `아버지여, 이렇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자리에서 아버지를 대하더라도 `나는 당신 앞에 이렇게 되겠나이다' 하며, 아버지 앞에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예수님도 운명 당시에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는 이 말씀을 성경에 남겨 놓은 것이 원통하다는 것입니다. 천상에 가서 보니 최후에 아버지를 상봉하여 넘어가는 그 자리에서 한마디라도 `아버지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혹은 `아버지의 소망의 뜻을 이루니 감사하옵니다'라고 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이런 말이 더 멋있지 않아요?

여러분들은 수천년 동안을 하루같이 참아 나오신 그 아버지를 모셔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 일신의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고통스럽다는 생각조차 버려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절대로 자기를 중심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내게 이런 것은 피하게 해주십시오' 이따위 기도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는 이 고통이 당신의 뜻 앞에 합당한 고통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내가 이런 처지에 놓여지게 됨은 모두가 아버지의 뜻이 있어서요, 또 뜻의 성취를 위해서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의 근본 관념부터 빼버려야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한 번이라도 위로해 드려 봤습니까? 무엇을 달라고만 했습니다. 이런 도둑놈 심보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기도해서는 아무리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기도해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기도는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타락한 후손, 죄지은 무리들은 복을 달라고만 합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 몸을 통하여 원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 한 몸이 환난을 겪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환란을 겪게 해주시옵고, 내 몸이 찢김을 당하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찢기게 해주시옵소서. 복과 영광은 당신이 받으시고 벌과 고통은 저에게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