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집: 안보교육 1986년 03월 08일, 한국 리틀엔젤스예술회관 Page #129 Search Speeches

신과의 생활을 통해 이상세계로 가려고 하" 것이 종교

그러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서 얘기하자구요. 내 자신을 잘못 심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잘못 시작했기 때문에, 또 내 자신이 잘못 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내가 아까 물어 본 거와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이 하나되고 있느냐 하는 물음에 있어서, 자신 있는 분 계세요? 이거 심각한 문제예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느냐? 싸우고 있는 거예요. 싸우지요?

이 몸은 물질을 대표한 거예요. 이 물질을 대표한 유물론이라는 것이 세계적 판도로 결실맺게 되었습니다. 유물사관이라는 것이 그 판도를 확정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유심사관이라는 것은 마음의 시작으로부터 판도를 결정지을 세계적 결실체로 등장한 것입니다. 이것이 유심사관입니다.

그러면 그 근원이 어디에 있느냐? 그 근원을 생각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근원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내 자신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또 역사 이래 수많은 위인, 성인, 현자들이 왔다 갔지만 그들도 '나는 몸 마음이 영원히 통일되어 행복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갖추어 감에 틀림없다' 하고 선포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격자는 어떠한 사람이냐?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되어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결론 내야지요. 안 그래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세계가 망하고 사회가 망하고 또 정부가 어떻고, 어느누가 어떻고 하기 전에 세계를 향해 비판하며 내다보듯이, 반대로 내 자신에 대한 비판을 해봤느냐 이거예요. 그리고 세계 안보의 필요보다도 자체 안보의 중요성을 망각하는 인류의 망상적인 군상을 어떻게 정리할 것이냐? 이 혼란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심각한 문제예요.

오늘날 통일사상이니 가디즘(Godism)이니 승공이론이니 하는 것이 나왔는데 이 모든 것이 막연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구체적이어야 돼요. 그것이 제삼자에 대해서 구체적인 것이 아니고 나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상이어야 돼요.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여러분 중에 여러분 자신을 수호할 수 있는 분이 있어요? 여기에 한 2천 3백 명 정도 모였다는 보고를 받았는데요. 2천 3백 명의 여러분들, 사회에서는 잘나고 똑똑하다고 할 것입니다. '나를 무시해선 안 될 것인데, 암만 문총재라고 해도…'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딱 버티고 앉아 있지 않아요? 그렇지요? 무시하면 안 될 것이라고…. 그러한 여러분 자신들이 여기서 여러분 자신을 수호할 수 있어요? 「……」 답변 못 하시누만. 또, 여러분 자신을 믿을 수 있어요? 「……」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나서라 이거예요. '나는 나 스스로를 수호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역사세계에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기독교의 성서 가운데는 바울이라는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여기에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도 왔지만 비근한 예로서, 이것은 대표적인 얘기이기 때문에 말하겠습니다. 바울 같은 양반이 말이요, 기독교의 신약 체계를 만들고 오늘날의 기독교를 창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훌륭한 양반이 있어요. 그런데 그가 말하기를 '내 마음의 법과 몸의 법이 싸우는데, 이 두 싸움 중에 언제나 몸이 마음의 법을 이긴다.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다!'라고 탄식했어요.

그러한 결론은 자타(自他)를 막론하고 다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거예요. 과거의 우리 조상도 그랬고 오늘, 현재의 우리도 이렇고, 미래의 우리 후손도 틀림없이 이러할 것인데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박총재도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가 생애에 대한 관을 갖고 나간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뭐.

문제는 어디 있느냐? 나를 영원히 믿을 수 있는 나, 나를 영원히 수호할 수 있는 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 사람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사람은 제아무리 잘살았자 70, 80년 살다 가면 그만이예요. 그런 사람이 주장하던 것을 따라갈 리가 만무하다는 거예요. 절대적인 기준, 절대적인 불변의 한 생애의 생활관으로 살고 갔다고 하더라도, 불신할 수밖에 없는 인간, 자기를 수호할 수 없는 인간, 자기를 믿을 수 없는 생애의 길을 가는 인간상을 대표해 갔다 하더라도 그를 믿을 수 없다구요.

그러니 여기에 문제가 있다면 변하지 않는 인격자, 그 변하지 않는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서 변하지 않는 인류의 역사를 끌어갈 수 있는 주체자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지금까지 인류의 사상세계에 과제가 되어 왔다는 거예요.

오늘날 20세기 말엽에 와서 수많은 철학자들이 신을 증거하고, 신을 증명하려고 하다가 낙오자가 된 사람이 많아요. 마르크스(Marx) 같은 사람도 신학교에 다니던 신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신을 증거하려 해도 증거할 수가 없으니 신이 없다고 한 거예요. 만일 신이 있으면 왜 이렇게 유대인을 학살하고 세계 인류 앞에 원한의 민족으로서 몰아치느냐 이거예요. 그런 문제에 부딪친 사람입니다. 그와 같은 양반이 만일 신을 알았다면 오늘날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겠어요? 신을 부정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까지 수많은 철인들이 동원되어서 생각했지만 실패작으로 끝났어요. 그래서 신이 없다는 패들, 유물론자들이 세상을 다 휩쓸고 전부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신이 죽었다 이거예요. 오늘날 현대신학에 있어서는 신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제 신을 재발견할 수 있는 길을…. 본래 철학은 신을 찾아가는 것이고, 종교는 신을 만나 가지고 신과 더불은 생활을 통해서 세계적 이상경지로 가려는 것입니다. 목적이 거기 있어요. 철학과 종교는 달라요. 철학은 신을 찾다가 실패했고 종교는 신과의 생활을 통해 이상세계로 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종교도 그 이상세계로 가려고 하다가 낙방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