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집: 본을 삼자 1970년 08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43 Search Speeches

탕감은 은사의 자리- 옮겨 주기 위한 것

그렇기 때문에, 슬픈 일을 당하더라도 그 슬픔을 슬픔으로 소화하는 것보다도 하나님과 더불어 기쁨으로 소화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와 세계를 위해 탕감의 노정을 간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기쁘게 됩니다. 세계의 탕감을 위해 하나님이 나에게 내려 주신 은사의 자리라고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세계와 직접 관계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와 세계적인 가치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국가와 세계를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고, 말없이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감사하게 되면 국가와 세계적인 가치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주지 않아도 은혜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을 잘하게 하기 위해서 은혜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지 못하면 도리어 은혜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은혜를 받은 것으로 소화해 가지고, 세계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걸고 일을 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게 되면 은혜는 그 사람에게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한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 자리는 웃고 춤추는 자리가 아닙니다. 보다 가치 있는 내용을 공급받는 자리는 웃고 좋아하는 자리가 아니라 긴장해야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긴장하는 자리. 그러면 긴장하는 자리는 어떠한 자리냐 하면 슬픔과 고통이 엇갈리는 자리입니다. 모든 것을 맺고 끊는 자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어서 어디에 갔었습니까? 이 땅에서 십자가에 죽은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죽어서 3일 동안 어디에 갔었습니까? 지옥에 갔었습니다, 지옥. 그것이 시험입니다. 인간에게는 죽음이 최고의 공포인데, 예수님에게는 지옥에 가는 것이 최고의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 지옥에서 공포의 주인이 되었느냐, 아니면 행복의 주인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예수님이 3일 동안 지옥에 가서 무엇을 했겠습니까? 지옥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이 되는 것을 문제시하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신앙하는 사람들은 악한 세상, 혹은 슬픈 세상에서 그 악과 더불어 흘러가지 않아야 되고 그 슬픔과 더불어 흘러가지 않아야 됩니다. 도리어 그 악을 막고 그 슬픔을 가로막아서 여기에 기쁨의 조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있어서 악한 사람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그 환경에서 중심적인 존재가 되면 본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주의 본이 되는 중심존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만민의 고통을 탄식하며 절망된 모습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다 극복하고 새로운 소망의 주인으로 나타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인류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