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 1959년 08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56 Search Speeches

믿음과 소망과 사'의 목적

오늘날과 기독교는 명실 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고, 민주주의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민주진영의 세계노선도 기독교 이념의 한 부분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나, 이제 그것도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말씀만 가지고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실체로서 영원한 생활로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는 회오리 바람과 같이 돌고 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오늘의 사조 밑에 모여 있는 우리들은 과거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이후 역대 선지들의 모습을 추앙합니다. 그 이후 2천년의 소망의 왕자였던 예수를 바라보고 치열한 투쟁의 역사를 회고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루려했던 것은 말씀을 위주한 약속의 소망이었지 실체적인 생활로써 나타날 수 있는 소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란 소망의 한날이 실체적으로 이루어지는 때가 끝날이요, 그것이 이루려는 것이 재림이상이요, 그 뜻을 성사시키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이 무엇이냐? 믿음을 위주로 하던 시대는 예수로 말미암아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실체이기 때문에 그를 믿으면 예수님 이전 4천년 동안 믿어 왔던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믿음 없는 백성 앞에 믿음을 세워야 했고, 소망없는 백성 앞에 소망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어요?

이 성경을 보십시오. 아브라함 이후의 예언을 보십시오. 믿음을 기반으로 한 소망은 메시아 한 분을 붙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상징적인 약속권내에서 신랑 신부라고 하는 소망을 갖게 되었으니, 이것은 예수가 십자가의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믿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이해하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실체적인 하나님의 역사라면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 이치가 맞다는 거예요.

그러면 소망의 실체요 믿음의 실체이신 그 분이 이루려고 하시는 것은 무엇이뇨. 다시 말하면 소망과 믿음의 목적이 어디 있느뇨.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를 찾아 사랑을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로 말미암아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주의 사랑의 품에서 살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최대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을 세운 목적, 하나님이 소망을 세운 목적, 하나님이 사랑을 세운 목적, 그 목적은 예수만도 아니고, 아브라함만도 아니고, 우리 선조 중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오늘의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위하여 6천년 동안 믿어 주고 찾아오신 그 분이 누구냐, 하나님입니다. 그 분이 누구냐, 나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천지가 뒤집히는 곡절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