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집: 전도와 정성 1971년 03월 04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62 Search Speeches

책임자의 정성

그러면 그러한 힘은 무엇을 중심삼고 유발시킬 것이냐?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유발시켜야 합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슬픈 일은 피해 가려고 하고 기쁜 일은 찾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것을 중심삼고 과연 하나님이 나와 같이하시는가를 자기가 테스트해 보아야 합니다. 더구나 책임자들이 이런 것을 몰라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부활은 일방적인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사방적으로 몽땅 뿌리가 뽑혀야 부활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하늘이 협조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리적인 노정을 가는 데 있어서도 하루하루 도수를 맞추어 나가야 됩니다.

목회자는 사흘에 한번씩이라도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됩니다. 선생님은 흥남 감옥에서 3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몇몇 식구들을 위한 기도는 밥 먹을 때부터 잠잘 때까지 매번 안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설령 떨어져 나간 사람일지라도 그를 위하여 계속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선생님을 찾아와서 떨어져 나간 것을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며 보고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이 약하여 어쩔수없이 선생님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인사를 하며 떠나는 그 비참한 정경은 동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떠나갔어도 그 사람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 그 사람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갔기 때문에 그 계승자가 나올 때까지 기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의 토대만 남아 있으면 아무리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뜻있는 사람을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구가 떨어져 나갔다고 해서 절대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한 식구가 떨어져 나가면 그 사람과 성격도 비슷하고 말하는 것도 비슷하고 걸음걸이까지도 비슷한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신기할 정도로 떨어져 나간 그 사람과 너무도 닮은 사람이면서도 모든 면에서 월등히 나은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볼 때, 정성들인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어느누구를 만나더라도 만난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더우기 하늘을 중심삼고 만난 사람이라면 절대 그 인연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이 교회에 나오다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잘라 버리거나 저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떨어져 나갔다고 해도 그 사람과 맺었던 인연만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한국을 위하여 들인 정성의 기준이 하늘이 공인할 수 있고, 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기준만 되어 있으면 사람이 없어도 세계적으로 수확을 거둬 들일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손해 안 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자의 정성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선생님은 과거에 삼천만 민족을 앞에 놓고 이마를 땅에 대고 피눈물나는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앞으로 선생님과 여러분의 정성이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날에는 삼천만 민족은 틀림없이 우리들에게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의 운세는 하나의 주체자를 중심삼고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도(道)의 책임자인데 지금까지 도를 위하여 정성을 들여 보았어요? 반드시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전도는 정성이 비례하는 것이지 지식이나 실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60년대에 이러한 체험을 다 해보지 않았습니까? 대학교를 나와서 왜 안다고 하는 사람보다 정성을 들이면서 전도한 사람이 더 낫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만큼 동정해 주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