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6집: 참부모와 중생 1994년 03월 12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82 Search Speeches

하나님편과 사탄편의 '간 입장- 있" 인간

하나님이 다시 인간을 구해 주지 않으면 안 돼요. 근본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데는 그냥 그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다 청산하지 않으면 안 돼요, 청산. 그것을 청산하는 방법을 통일교회에서는 탕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경우에 그 죄에 상당하는 것을 되갚지 않으면 근본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 거라구요.

사탄이 주인이 된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려고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 편의 사람들을 중심삼고 점점 끌어오려 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거지요.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없었다고 한다면, 사탄 전권의 세계가 되어서 인류는 벌써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구요. 하나님이 있어 가지고 이것을 복귀하려고 하는 역사(役事)를 해 왔기 때문에 전쟁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으로부터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라고 하는 분별의 새로운 섭리권의 세계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편의 세계가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를 보면, 역사는 종교권과 비종교권의 역사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결과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왜냐 하면, 사탄과 하나님이 인간을 중심삼고 빼앗기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어떻게 되어 있느냐?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자기가 결정하는 방향에 따라서 왔다갔다할 수 있어요. 어떤 때는 사탄 쪽으로 갈 수도 있고, 어떤 때는 하나님 쪽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사탄 편에 있던 것이 하나님 쪽으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 사람 자체가 언제라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다시금 사탄 쪽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또, 사탄 쪽으로 돌아갔다고 하더라도 사탄을 부정하고 하나님 쪽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왔다갔다하는 자리에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을 사탄도 무서워하고 있고, 하나님도 무서워하고 있다는 거예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중간적인 입장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야당이나 여당을 생각해 볼 때, 여당에 있던 사람이 야당으로 가고 야당에 있던 사람이 여당으로 가고, 왔다갔다하는 경우와 같아요. 그러한 인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인간 자체가 말이에요, 하나님을 배반한 때가 수없이 많습니다. 사탄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있는 것도 나쁘지만 말이에요, 선한 자리에 돌아온 사람이 반대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에게 피해를 입혀 온 거예요.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인간 자체를 하나님도 믿을 수 없고 사탄도 믿을 수 없어요. 그러니까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와 있는 여러분도 그렇다구요. 지금은 뭐 '틀림없이 통일교회다!' 하지만 말이에요, 사탄이 계략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말이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아…!' 하면서 귀가 솔깃하는 것입니다. (웃음) 이번에 축복받은 누구예요? 야마자키 히로코도 그렇지요? 출발의 내용이 무엇이었든지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될 것 같으면 인간은 언제라도 방향을 돌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다 그렇지요?

이번에 수련회에 온 사람들도 여기에 와서 '아, 선생님을 만나서 말씀을 듣고 이렇게 결심했다!'고 하겠지만, 어때요? 통일교회의 주류 멤버가 되느냐, 안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선생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것은 자기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하는 것도 선생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에요,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거라구요. 그런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을 오랜 역사를 통해서 해 오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떻게 하면 믿겠느냐 하는 거예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말이에요, 이 사탄 세계에 있어서의 자기 자신을 포기해 버리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죽여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순교할 수 있는 결심을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느냐 하는 문제를 하나님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 가운데서도 그런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거라구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한 거라구요. 그거 결론적으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믿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치더라도 넘어가겠다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나님은 보지 않을 수 없다구요. 왜냐 하면, 오랫동안 하나님은 속아 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더라도 3년 동안 생사를 함께하고 목숨을 걸고서라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겠다고 맹세한 제자들도 전부 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부정하고 도망을 갔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그렇다구요. 그것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데리고 가는 데는 말이에요, 이 세상 가운데서 성공한 사람이나 당당하게 자기의 기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끌고 가겠다는 생각은 안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버려지고 비참하게 되어서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거라구요. 그렇게 세상 가운데 버려져서 돌아갈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주어서 훈련해 나오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 사람들 가운데는 인생 노정에 있어서 낙담한 사람들이 많아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종교에 귀의하기 쉽다구요.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 출발의 근본이, 출발의 근본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는 자리에 있었어야 될 것이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탄 편으로 돌아갔습니다. 근본에서부터 하나님을 부정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부정한 그 기준, 그 조상으로부터 쭉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와 있는 수천 명이나 되는 여러분의 첫 조상이 하나님을 부정한 기준에서 출발한 거예요. 근본이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의 근본인 조상이 이와 같이 남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