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집: 섭리노정으로 본 우리의 입장 1975년 06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 Search Speeches

통일교회가 가야 할 운명의 길

그러면, 대내적인 입장에서 내가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왔느냐? 그것은 영육을 중심삼은 기독교를 재탕감해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육적인 면에서 세계사를 걸어 놓고 수많은 민족을 대표해 피의 대가, 희생의 대가를 치러 나온 것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1948년 정부를 수립할 때까지 독일을 중심삼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벌어졌느냐? 그것은 유태인이 육적으로 세계사적인 탕감을 할 수 있는 한계점을 두고 볼 때, 그 양이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피를 흘려서라도 메워야 할 하나님의 채찍이요, 사탄의 최후의 결정적 타격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희생의 대가를 기원으로 했기 때문에, 2차대전의 하늘편적 승리와 더불어 선생님이 출발한 것입니다. 그때는 대한민국이 어떤 입장이었느냐 하면 나라가 없었다 이겁니다. 나라가 없었다 이거예요. 그 시절에는….주도적인 입장에 누가 섰느냐 하면, 서구문명권에 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이정권(李政權)에 참여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가인을 대표한 미국을 기반으로 해서, 미국의 풍토에 접하고 미국의 민족적 배후를 이어받은 기독교사상 밑에 다져진 무리들이 와 가지고 한국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한 시절에 선생님은 한국 강토에서 외롭게 출발했던 거예요. 그래서 한때를 맞이하기 위해서 신령한 집단들을 규합하기 위한 길을 거쳐 가면서, 한국의 신앙계가 어떻다는 것을 내가 총비판했던 것입니다. 앞으로의 주도적인 방향을 어떻게 가려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길을 따라 가지고 고위층 신앙자들 앞에, 소위 한국에 있어서의 한다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뜻을 다 전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하늘이 이런 뜻을 이루기 위해서 대한민국에서 준비해야 할 단체를, 즉 중간적 단체를 많이 만들었고 그러한 단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왔지만, 그 결과는 전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기성교회 자체도 그러한 신령한 집단을 사탄의 역사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의 결과가 이렇게 될 수 없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중간의 수많은 신령한 종단을 신봉하던 신자들도 전부 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삿(邪)된 것이라고 하며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의 환경을 거쳐 나가면서 준비한 많은 단체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단체들을 선생님은 쭉 일괄적인 측면에서 연결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전부 다 평면적인 기준에서 하늘의 내적인 사정을, 내적인 전체의 관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 나름의 주장을 하다가 결국은 다 사라져 버리고 통일교회만이 남아 가지고 기성교회와 대결하는 입장에서, 과거의 신령한 단체들이 핍박받던 모든 것을 우리 통일교회가 뒤집어 쓰고 지금까지 핍박을 당해 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핍박을 받으면 같이 싸우고 법적인 모든 기반을 통해 가지고 한풀이, 분풀이했으면 좋았을 텐데, 왜 그냥 지내 나왔느냐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것은 복귀 섭리의 본래의 뜻, 맞고 빼앗아 나오는 작전으로 공의(公義)를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복귀섭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뜻의 길을 순응해 나가야 되기 때문에 묵묵히 개인적 기반에서부터 가정적 기반을 닦기에 노력했던 것입니다.

아까 말한 대로 기성교회가 반대해 가지고 떨어져 나감으로 말미암아, 전면적인 반대를 하고 나섬으로 말미암아 시급한 문제가 무엇이었느냐 하면, 기성교회 대신 하나의 종단을 형성해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교 앞에 있어서 예수는 죽지 않고 3년노정 위에 유대교를 대신한, 예수를 중심삼은 기독교의 형태를 닦아 가지고 유대 민족을 중심삼고 영향을 미쳐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교를 능가해 가지고 로마제국과 손을 붙들었더라면 살 길이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통일교회 자체도 그러한 운명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원리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지 젊은 청년들을 규합해 가지고 새로운 교파를 편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 통일교회의 입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