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집: 통일교회 활동과 학자들의 사명 1980년 11월 17일, 한국 서울 롯데호텔 Page #177 Search Speeches

자유세계의 몰락을 막기 위한 "레이저와의 싸움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뉴욕 타임즈라든가 워싱턴 포스트지가 전부 통일교회를 반대하고 전면적인 공세로 나올 때 보면, '반대 부모회'라는 것이 있어요. 젊은이들이 전부 다 레버런 문을 따라가니 통일교회의 세뇌공작으로 전부 미쳤다고 이렇게 악선전을 하기 위한 반대 부모회, 또 젊은이들을 납치해 가서 디프로그래밍(deprograming;역세뇌)한다고 하는 반대 부모회가 있습니다. 그 반대 부모회가 있는 반면에, 우리는 그것에 대치하기 위한 '지지 부모회'라는 조직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언론기관에서는 말이예요. 반대 부모회에서 350명이 모였으면 동그라미를 하나 더 쳐서 3,500명이라고 하고 35명이 모였으면 350명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때 700명 가까이 모여서 지지 부모회의를 했는데, 이것은 동그라미를 하나 빼 버리고 70명이라고 낸 거예요. 이것은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미국의 언론계에는 이미 공산주의가 침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에 의해 완전히 좌우되는 언론계라고 봐야 되는 거예요.

자, 그런 싸움을 하니 이건 뭐 모든 언론계를 집결시켜 가지고 레버런 문 타도 운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구요. 거기에서 1976년도가 최대의 격전의 시기였습니다. 워싱턴을 중심삼고, 거기에는 기성교회 전체, 즉 신교와 구교, 그다음엔 유대교, 미국정부, 그다음엔 공산당 전부가 집결되어서 공세를 취한 거예요. 그 총체적인 결실이 뭐냐 하면, 프레이저의 코리아 게이트(Korea-gate)사건입니다. 그렇게 해서 통일교 회를 타도하자는 거예요. 그러한 실정에 있어서,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입장에서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이와 같은 국제적인 추세를 아는 한 맞서서 선두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박보희를 세워 가지고 미국 역사에 없는 반박을 했습니다. 2백 년 국회사에, 청문회에서 그렇게 반박을 받아 보고 그렇게 심한 논란의 상황을 체험한 사람은 프레이저 의원밖에 없다고 보는 거예요. 이건 뭐 막 들이댄 거예요. 들이댄 거라구요. 만일 우리가 죽게 된다면 할 말이나 다하고 죽자 이런 거였어요.

여러분, 외교분과위원장이라고 하게 되면 방대한 세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세계 약소국가의 모든 수상들이 벌벌 떠는 힘의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구요. 그러한 사람에게 통일교회의 박보희, 레버런 문이라는 존재는 훅 불면 날아가는 먼지알 만큼으로도 생각되지 않았지요. 그렇지만 하늘은 살아 있기 때문에…. 그걸 밀어 내야 되겠다고 싸워 가지고…. 참 거 하늘이 다 도와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프레이저를 꺾어 버렸다구요. 그건 뭐 프레이저 자신이 증명하는 거예요.

프레이저를 중심삼고 먼데일 부통령과 카터 대통령이 일련의 리버럴(liberal:자유주의적인) 계통의 직계 계열이 되어 있었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정치 고문 되는 코헨 박사 같은 사람은 북한에 왔다갔다 하면서 연락병 노릇을 하고 있는 대표자거든요. 그는 틀림없이 공산주의의 하나의 앞잡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한 자유세계의 몰락은 점점 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절박한 운명으로 부딪치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차피 반공전선의 세계적인 첨단에 서 있는 한 싸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카터와 귀를 맞잡고 이마까기 놀음을 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