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집: 섭리적 현시점 1972년 06월 05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289 Search Speeches

노아의 섭리적 위치와 그의 믿음

예를 들면, 아담이 타락한 이후 노아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은 1600년 기간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1600년 동안 하나님이 수고하였지만 그 수고의 대가를 성사시키느냐 못 시키느냐 하는 것을 결정짓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라는 한 사람을 세워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수고하신 그 기간 전체의 공적을 그냥 그대로 노아 자신이 이어받아 가지고 영광된 자리에 서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때를 맞이하여 노아를 세웠어도 노아 앞에 영광의 생활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를 택해 가지고 도리어 이해할 수 없는 자리에 내몰았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라랏 산 꼭대기에 배를 만들라고 한 것입니다. 배를 지으려면 강가든가 바닷가에 지어야 할 텐데도 불구하고 얼토당토 않게 정반대인 산 꼭대기에 지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믿을 수 없는 사건인 것입니다.

더더우기나 세계적인 책임을 짊어져야 할 노아마저도 그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출발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아는 믿지 못할 그 말씀을 믿고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120년 동안 방주를 짓기에 온갖 충성을 다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노아 할아버지에게 있어서 그 기간에는 즐거운 때가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방주를 짓는 일도 물론 귀하겠지만 그 방주를 지어 나가는 매일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노아의 심적인 태도가 더더욱 문제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만일 삼천만 민족이 살고 있는 한국 땅에 그런 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배를 짓는 데 있어서 충청도면 충청도, 강원도면 강원도 어디든지 좋아요. 어떤 곳에서 배를 짓는데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배를 짓는 사람이 있대' 하면 여러분이 그 말을 믿겠어요? '그 미친 녀석이야! 말도 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도리어 말하는 사람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까지도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텐데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이나 미친 사람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것을 정상적으로 보는 사람은 돈 사람이라는 거예요.

하늘은 이렇게 한때를 마련하기 위하여 16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한 사람을 세워 그에게 명령하여 그 일을 하게 해야 할 하나님이지만, 여기에는 정상적인 입장에서 명령을 하지 못하는 연유가 개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자, 그러면 왜 그래야 되느냐? 하나님하고 사람만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을 세워서 섭리적인 뜻을 이루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뜻을 이루어 놓기를 무엇보다도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그런 자리에 내세우지 못하느냐?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면 그것을 할 수 있는데 왜 못 하느냐? 이런 문제를 두고 볼 때, 그렇게 간단하게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되신 하나님이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말했으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이 본래 인간을 타락하라고 지은 것이 아닙니다. 타락해서는 안 되게끔 지은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고 한 것을 못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못 했느냐? 하나님 때문에 못 한 것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못 했다는 거예요. 사람의 무엇 때문에 못 했느냐? 불신 때문에 못 했습니다. 믿지 못했기 때문에 못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정상적인 자리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자연적으로 믿을 수 있는 자리에서 믿어야 했던 아담 해와가 믿지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상적인 자리에서 믿어야 할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반대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믿지 못할 자리에서 믿어야 된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자리에서 죄를 지었지만 그것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비정상적인 자리에서 탕감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여러분도 만일 죄를 짓게 되면, 5년이면 5년, 10년이면 10년 형을 받아 형무소에 들어가서 복역을 해야 됩니다. 복역하는 것은 정상적이 아니라 비정상적입니다. 거기는 모든 체제가 자유를 허락지 않고 제재권내에서 자기 스스로의 입장을 바라보면서 그 형기가 찰 때까지는 그 환경을 정상으로 여기며 돌파해 넘어가야만 해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노아 할아버지에게 하나님이 그러한 명령을 제시한 것은 노아 할아버지가 미워서가 아니라, 타락하였던 근본, 그 원칙이 어긋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러한 명령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였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내적인 심정이 얼마나 비참하였겠느냐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