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집: 신앙의 표준 1971년 06월 2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88 Search Speeches

대한민국을 세계의 주체국으로 남기자

이러한 등등의 문제를 두고 볼 때, 선생님은 망하지 않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온갖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선생님 자신이 그냥 그냥 이럭저럭 가는 사람이 아니라구요. 정성들이며 가는 것입니다. 그제는 6·25동란이 일어났던 날입니다. 그 전날이 무슨 날이냐 하면 우리가 목사들을 데려다가 제7차 원리 공청회를 마친 날입니다. 이렇게 딱 맞아 들어갑니다. 이때는 통일교회가 넘어가는 때입니다. 단숨에 넘어가는 때입니다.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 때에는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섭리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금년이 6·25 21주년 되는 해인데 이것과 통일교회 선생님 21년노정 기간하고 어떻게 이렇게 맞아떨어지고, 7수에 해당하는 목사 장로들의 제7차 공청회 기간이 그렇게 맞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까지 3일 기간은 좋지 못한 기간입니다. 오늘이 27일이지요? 24, 25, 26일은 불길한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알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금년 6월에는 대한민국에서도 이렇게 변천이 벌어지지요? 우리 통일교회도 체제를 개편하여 새로운 체제로 죽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은 살아서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를 끌고 나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목적점이 어디냐? 현재 이 자리가 아니예요. 이 자리는 낳은 자리입니다. 낳은 자리라구요. 낳은 자리에서 살아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여기서 기원해서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이냐, 언제까지 갈 것이냐 하는 문제를 여러분은 모를 거예요.

이런 등등의 문제를 중심삼고 볼 때, 김일성이의 한계점을 왜 명년 1972년도까지로 잡느냐? 김일성이가 1972년도면 회갑을 맞습니다. 4월 15일이 생일이라구요. 이 녀석, 너 60세만 넘어 봐라, 이놈의 자식아! 그때까지 통일교회가 대한민국에서 민족을 걸고 가정과 개인이 희생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공산당들이 나라를 중심삼고 충성하는 것 이상의 조건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세계에 없는 가정 출동, 가정의 아주머니 출동이라는 문제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또 어떤 일을 시킬지 모른다고 지금도 야단하는데, 이제 그 아주머니들한테 '너희 아들딸까지도 같이 데리고 가서 희생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까지 생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벌어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가서 3년 동안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지금까지 통일교회가 제물 되기 위해서 왔지만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라 할 때는 그 일을 해야 되는 거라구요. 이러한 등등의 길이 아직까지 여러분 앞에 남아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표준이 무엇이냐? 국가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아니예요.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구…' 할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이라는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 아닙니다. 대한민국에만 매여 있으면 세계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앞으로 세계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주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세계의 주체국가로서 남아질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 통일교회 문선생의 사상입니다. 통일교회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한민국을 이끌고 가 가지고 절대적으로 희생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세계적으로 희생시켜야 됩니다. 세계를 위해 희생하며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세계가 빚을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잖아요? 여러분의 직장에서도 그렇지요? 직장에서 희생하면 희생한 만큼 올려 주는 것입니다. 올려 주는데도 내려가겠다면, 반동작용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양심세계의 사조의 내용입니다.

인간이 망하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더더구나 종교를 중심삼고 가는 길에서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개인을 위해 사는 사람은 열 번 수고하면 열 번 쪼그라들어요. 알았어요? 개인을 위해 고생하면 그저 폭싹 녹아 죽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은 고생하고 고생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보람이 있다는 거예요.

통일교회 패들의 얼굴을 보면 팽팽하다는 것입니다. 어저께도 박봉애씨가 와 가지고 누구를 만나서 얘길 하는데 왜 이렇게 젊어졌느냐고 하더라는 거예요. 자기 아들딸 위해서 먹고 살겠다고 까박까박하는 사람은 숨을 쉬어도 답답해 가지고 절벽강산으로 막힌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늙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남을 위해서 살면 지금은 고생하더라도 앞으로의 생활이 훤히 트인 생활이기 때문에, 숨을 쉬어도 마음놓고 깊은 숨을 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여건에 있어서 남보다 잘 되어 가는 겁니다.

우리 할머니들을 내 가만히 보게 되면 말입니다. 여기 석온 할머니를 보면 쪼글쪼글한 것이 보기에 견딜 수 없을 정도이지만, 한참 은혜에 취해 있을 때 척 보면 아주 미인으로 보일 때가 있다구요. (웃음) 인물을 보게 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다른 일면, 마음에 소망을 갖고 있는 얼굴을 보면 저런 할머니도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세상 할머니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자기 개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가면 갈수록 절망이지만 남을 위해서 살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