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집: 복귀의 한 1971년 02월 19일, 한국 서대문교회 Page #53 Search Speeches

고생길. 희생길을 가지 않고" 하나님의 한을 ' 수 -다

하나님의 한, 복귀의 한은 누구에게 있느냐? 먼저는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는 지금까지 피맺힌 한의 심정을 지니시고 복귀노정을 거쳐 오신 역사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오늘 인간 세상에서 아이고 죽는다고 큰소리치며 죽어 나자빠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알겠어요? 천지를 지으신 선한 주인이 되셔야 하고, 영광의 아버지가 되셔야 할 하나님께서 인간들보다 더 비참하게 계신다는 것입니다.

열 명의 아들 가운데에 한 아들이 급살맞았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열명의 아들 가운데 한 아들이 죽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부모의 마음은 열 아들에 대해 똑같은 것입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타락된 인류를 지금까지 구하지 못하고, 구해야 할 부모의 입장에서 허덕이는 하나님의 심정은 얼마나 피눈물이 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고통을 받는 데에도 대왕이요, 눈물을 흘리는 데 있어서도 대왕이십니다. 역사상에서 피눈물나는 곡절의 사연을 모두 품고 나오시며 죽음의 자리 피의 제단 가운데에서 순교자의 왕의 자리에 섰었던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비통한 모든 내용을 중심삼고 볼 때, 아무리 인간이 고생을 했더라도 하나님의 고생에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를 알고 그 아버지를 위하는 효성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당하는 수난과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맏아들이나 독자가 죽었을 때 머리가 헤쳐진 채로 땅을 치며 통곡하는 어머니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걸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인간을 잃어버린 하나님께서는 어떠시겠습니까? 그 어머니는 자기 자식이 죽었다고 처량한 모습으로 한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인류에게 무한한 행복과 선의 이상을 주기 위해서 최고의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던 아담 해와가 한 날에 간곳없이 전부 깨져 버리는 운명이 되어 버렸을 때, 그것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인간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것에 비할 수 있겠어요? 타락한 인간을 구하기 위해서 온갖 수난을 겪으시고 억울한 자리에 몰려 피어린 고통의 노정을 걸어오신 아버지의 사정에 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자식이 급살을 맞아도 눈물을 흘릴 수 없는 것이요, 치가 떨리는 일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할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 끼리끼리에 있어서 어려운 것을 서로 책임지려 하고, 선한 것을 남기려고 하는 사람은 인간세계에서 하나님의 한을 풀어 주는 책임을 할수 있습니다.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어려움을 내 일신에 짊어지고 나라와 세계의 선봉에 서 가지고, 죽음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여 안심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지고 아버지의 수난길에 있어서 방파제가 되어 적진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아들딸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천신만고 수백 배의 수난이 앞에 가로놓여 있다 하더라도 그 아들딸을 위해서 고생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나님이 기쁨의 고생을 하는 입장에 서야 기쁨과 영광이 상달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고생길을 가지 않고는, 희생의 길을 가지 않고는, 남한테 빚을 지우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