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집: 원수를 대한 아버지의 원한 1960년 07월 17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97 Search Speeches

인간이 최후의 안식처로 삼을 곳

인간은 본래 어떤 무리였느뇨? 하나님의 품에서 애지중지 사랑을 받던 무리였습니다. 하나님의 피를 받은 하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세포 중의 세포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칙을 세워 놓고 만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기준을 무시하는 날에는 온 피조물이 다 깨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서로 좋아하며 살아야 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놓쳐 버리고 오른손엔 하나님을 붙들고 왼손엔 이 땅을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끌어다 접붙이려는 놀음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뇨?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배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양심의 기준을 완성하지 못하고 배반한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이념을 세우지 못하고 배반한 것이 타락이라는 말입니다. 초점은 하나님의 심정기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은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실 때에는 `너희들의 몸뚱이를 사랑하라. 어떠한 학문이나 지식을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도의 길을 세워 나오시는 기준입니다.

이러한 곡절을 모르고, 사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었는지, 우리 선조가 어떤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는지를 모르고 어떻게 원수를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원수에 대한 한을 풀 수 있겠습니까? 맺혔으면 풀어야 합니다. 맺힌 것을 풀려면 반대방향으로 뚫고 나가야 합니다. 원수들이 못 나가게 하더라도 뚫고 나가야 합니다. 원수의 장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입니다.

인간들은 앞으로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그 길을 찾아 나가고 있으되, 양심과 심정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되겠느냐? 역사적인 사조(思潮)를 볼때, 인간들은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오되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연의 양심과 그 양심에 불어넣고자 하시는 본연의 심정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외적으로, 환경적으로, 상징적으로 수습해 나오는 것이 사상이요, 주의입니다. 사상이나 주의는 양심적인 감흥을 일으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땅에 있다면 그것은 사탄입니다.

하늘을 통하여 인간의 양심을 폭발시켜서 환경을 혁명시키는 운동이 이 시대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일면을 갖추고 나온 것이 오늘날의 좌익입니다. 유물사관이예요. 이것은 이 땅 위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득세(得勢)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상(天上)의 인연을 중심삼고 나오는 주의 앞에는 손들어야 됩니다.

인간이 최후의 안식처로 삼을 곳은 어떤 곳인가? 마음이 편안하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음 가운데 심정의 안식처를 개척해야 합니다. 좀 어려운 말이지요. 마음이 편안한 환경을 가졌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핵심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핵심은 심정입니다. 그 심정을 채워 놓아야 그것이 만사(萬事)의 동기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부모가 좋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부모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심정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뗄래야 뗄 수 없는, 환경을 넘고 시대를 넘을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