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집: 절대적 가치관 1982년 11월 25일, 미국 필라델피아 프랭클린 프라자호텔 Page #302 Search Speeches

본체론과 종교의 분쟁

모든 종교의 가르침인 덕목, 즉 실천요목들이 잘 지켜지기 위해서는 그 종교의 본체인 절대자의 속성과 창조의 목적, 그 절대자의 실존성등이 충분히 밝혀져야 합니다. 중세시대 또는 근세 이전까지는 인간의 머리는 그다지 분석적, 논리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임금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 하면 무조건 그 가르침이 옳은 줄 알고 순종하였지만, 과학이 발달한 오늘에 있어서는 인간의 정신은 대단히 분석적이 되고 논리적이 되어서 아무리 종교지도자가 '…을 하라'고 가르치더라도 '왜 그래야 하는가?'라고 그 이유를 캐묻게 됩니다. 따라서 이 반문에 답해 주지 않으면 그 가르침은 설득력을 잃고 맙니다.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반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과연 있는가?', '하나님이 전지, 전능, 무소부재하고, 지선(至善), 지미(至美)하고, 사랑이며, 심판의 주이며, 인류의 아버지 등으로 표현하지만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만있어도 좋을 하나님이 왜 우주를 창조하였는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무엇일까?', '창조에는 방법이 있었을 것인데 그 방법은 무엇일까?', '절대선인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왜 약육강식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인간이 타락하여서 죄의 세계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완전한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이 왜 타락하게 되었는가?'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반문에 대하여 합리적인 답이 주어지지 않는 한 오늘날의 지성인들은 종교(예컨대 기독교)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사랑의 덕목, 유교의 가정윤리의 규범, 불교의 수행의 실천요목, 회회교의 코란의 요목들은 버린 바 되고 마는 것이며, 때로는 지성인들이 반종교적인 행동까지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의 세계인 구주(歐洲;서구와 동구)의 토양에 근세 이후 유물론, 무신론이 발생하여서 오늘날 전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것은 그 근본원인이 실로 이 본체론의 애매성에 있는 것입니다. 그 제일 현저한 예가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니체 등이 기독교가정에 태어났으면서도 무신론자, 반기독교인이 된 사실이라 하겠습니다.

더우기 개탄스러운 것은 인간의 싸움을 중재하고 인간정신을 선도해야 할 종교가 오늘날 가끔 분쟁을 일으킴으로써 종교의 위신과 권위를 더욱더 실추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대교와 회회교가 싸우고, 구교와 신교가 싸우고, 기독교와 불교가 싸우고, 심지어 같은 종교의 교파끼리도 싸우고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분쟁의 근본원인도 역시 본체론의 애매성에 있습니다. 절대자는 오직 하나이며 둘이나 셋이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각종교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절대자만이 바른 신이며 그 외의 신은 참신(神)이 아니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결국 종교마다 절대자가 있는 셈이 되어서 절대자가 여럿이라는 배리(背理)가 성립됩니다. 따라서 결국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모든 종교의 신은 상대적인 신에 불과하였다는 결론이 되게 되어서 각 종교를 통해서 세워지기로 되었던 절대적 가치관, 즉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관한 이론은 상대적인 것에 머물고 말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때까지의 종교는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절대적 가치관을 세울 수 없다는 결론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종교가 절대자에 대한 정확한 해명을 해놓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