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전후방 1971년 02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09 Search Speeches

언제나 희생의 자리- 서 "던 선편의 사람"

한 사람이 그렇게 희생됨으로 말미암아 그가 억울하고 비참하게 아무 죄 없이 무모하게 죽어갔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될 때, 악한 세계의 사람들도 그것을 직시하고 그 참상을 참관할 때 그들의 마음에는 새로운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참인데도 불구하고 거짓에게 억울하고 불쌍하게 희생되어 갔다는 것을 생각할 때, 거기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악된 요소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에 의해 비로소 폭발되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희생의 제물을 세워 가지고 후원자를 내세우는 일이 선한 역사를 찾아 나가는 투쟁의 행각입니다. 이 투쟁이 없이는 이와 같은 정상의 인연을 벗어나서는 발전할 수 없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은 언제나 희생하고 나서 발전해 나오는 것이고, 그것이 선의 역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래야 되느냐? 악이 전체 주위를 점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터뜨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런 싸움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개인이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서 희생하지 않고 세계적인 싸움을 하여 이겼다면 그의 승리는 세계적인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환경적으로 대한민국 내에 있고 어떤 종족의 한 아들딸로 태어난 개체라 하더라도, 그가 30억 인류와 하나님의 선을 대신하여 싸워 망하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 그 자체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승리의 터전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항상 개인이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노아의 한 가정이 세계의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왔고,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요셉 가정, 혹은 사가리아 가정이 세계를 대신할 수 있는 가정의 자리에 서서 발전시켜 나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을 위주로 하여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완전히 하나된 가운데 서로 뜻이 같은 운명의 길에서 세계를 대신하여 수많은 악한 가정과 대결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그들을 밀어낼 수 있는 하늘편에 서서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는 하나의 가정을 세워 그 가정으로부터 수많은 가정들과 싸우게 하는 일을 지금까지 엮어 나온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임을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노정에 있어서 책임을 짊어진 가정을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개인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반이 되어 있는 것이 노아 가정이요, 아브라함 가정이요, 모세 가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싸움을 책임지고 왔던 예수를 중심삼고 볼 때도 가정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중심삼고 보면 아브라함의 일파가 있었고, 모세를 중심삼고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싸움의 자리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가정의 중심으로서 하나의 남성의 자리에 서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입장은 어떠했느냐? 예수에게는 그 민족과 유대교가 하나된 터 위에, 그의 친척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민족과 국가의 형태를 갖춘 가운데, 하나의 중심적인 남성으로서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여 세계의 민족과 국가 앞에 당당히 싸워 가지고 승리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단, 혹은 모든 가정이 예수 앞에서 그런 책임을 못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의 터전을 갖지 못한 예수의 입장은 다시 개인적인 싸움부터 시작해야 할 입장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3년 공생애 노정을 통해 개인의 싸움을 거쳐 가정과 종족, 그리고 민족의 싸움터를 다시 넓히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갔는데, 그것이 십자가의 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