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하나님의 축복의 최대의 소망은 무엇이냐 1960년 04월 2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10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심정과 부모의 심정과 부부의 심정

그러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한다는, 그러한 한계는 어디일 것인가? 지금까지 왔다 간 수많은 열녀들이 말없이 높여 줄 수 있는 그런 충성에 어린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표준입니다. 만일 신랑되신 예수 앞에 그런 진정한 신부가 나왔던들 이 세계에 벌써 하늘의 뜻이 다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끌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에 그러한 분이 나온다 할진대 세상에 아무리 악이 성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들어오는 선의 강도가 그 악의 강도보다 몇 배 이상 강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한 세상이라도 괜찮습니다. 그런 심정의 기반에 흘러 들어오는, 선을 지향하는 힘은 사탄세계의 악 같은 것은 문제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간세계에는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무한한 선의 지향력을 폭발시켜 줄 수 있는 원천이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신랑되신 예수는 이 땅 위에 오시지 못한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신부가 이 땅 위에 나타나면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내 버리고 땅으로 뛰쳐 내려오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2천년 동안 영계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통한 힘, 즉 악에 대한 공포의 마음이 아닌 심정을 통하여 우러나는 선을 중심삼은 강렬한 힘, 강한 천적인 힘이 오늘날 인류세계에 일면으로라도 들어온다 할진대 세계는 그 앞에 정복될 것입니다. 그래야만 악을 갈라 세우고, 악을 소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악을 소화시킬 수 있는 선, 악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악을 삼켜버릴 수 있는 선, 심정적으로 폭발되어 우러나는 천적인 선의 역사가 벌어져야 됩니다. 이러한 역사를 전개시킬 수 있는 시기가 인간이 바라온 재림 이후의 시기입니다.

부부의 심정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줄기에 비유한다면 부부의 심정은 잎과 같고, 충신의 심정은 뿌리와 같습니다. 이것이 모두 한 생명권에서 움직여야만 하나의 완성체를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귀노정을 거쳐 나가는 이 마당에 우리가 신랑되신 예수님을 사모하는 데 있어서 상대적인 심정만으로 사모해서는 안 됩니다. 줄기를 거쳐서 뿌리까지 연결돼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도 개인적인 상대를 갖춘 후 가정을 이루어 세계와 연결해야 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뿌리와 같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이요, 그 하나님을 향하여 정성을 기울이고 충성을 다하는 것이나 부모를 대해 충성을 다하는 것은 줄기를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래야 완전히 연결되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심정은 잎과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은 한때입니다. 한때예요. 여러분, 그런가 안 그런가 보세요. 은혜 받았다고 좋아하고, 뭐 어떻고 저떻고 하다가는 얼마 안 가서 떨어져 버립니다. 줄기가 못 돼요.

만일 이 땅 위에 신랑 신부의 심정을 지니고 참부모 앞에 참아들딸의 심정을 연결시킨 자가 있었다 할진대, 오늘날 이 땅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세계에서는 한번 은혜를 받으면 그만입니다. 그 심정에 한번 접하면 암만 떼어버리려 해도 떼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를 만난 후에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했지요. '우리 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누가 나를 끊으리요. 적신이나 칼이나 기근이랴'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인 이때에 있어서는 여러분들 자신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생사의 의식을 잊어버리고, 죽고 사는 것을 문제시하지 않고 달음질 칠 수 있는 사무친 심정이 여러분에게 있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그러한 길을 가는데 하물며 하늘 길을 가는 여러분에게 그러한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런 마음에 사무쳐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기독교인들도 '오,주여!' 하다가 주님이 나타났다 하면 목이 부러지고 다리가 부러진다 해도 그것을 개의치 않고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려 하는데, 여러분에게도 이런 사무친 심정이 있느냐? 이것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잘 아는 것도, 무슨 학박사가 되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 기준을 거치기 전에는 참효자가 될 수 없고, 참효녀가 될 수 없고, 참 충신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