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집: 천주에 선 예수님 1965년 10월 03일, 일본 동경교회 Page #111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영적 구원과 재림

역사를 토대로 하여 현실을 밟고 미래를 향하여 재출발하는 것이 하나님의 예수님에 대한 최고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목적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인 것이다. 지금까지 그 목적이 거듭 나타날 수가 없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사축(死畜)의 제물을 바쳐 외적복귀의 길을 도와 가려고 한 것이었지, 생축(生蓄)의 제물을 바쳐 통하는 구원의 길을 간 것은 아니었다. 십자가의 구원의 사명, 역사상에 있어서 이 이상 비참한 길은 없었다.

하나님의 첫번째의 자녀로서 탄생하였던 아담 해와는 어디로 갔는고. 그들은 사탄편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것을 분쇄하고 거듭 하나님편으로 구원하기 위한 기대를 만들기 위하여 보내어진 예수님은 어디에 계신다는 말이냐. 십자가에 달리어 사탄이 예수님의 육신을 범하도록 허락치 않을 수 없는 권(圈)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사정 밑에서 영적 구원의 길을 열고 간 것이 제2이스라엘로서의 기독교인 것이다. 제1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거역하자 제2이스라엘을 세워서 거역하지 않는 원래의 이스라엘이 되기를 원하셨고, 제2이스라엘을 연결시켜 새로운 희망을 남기고 구주를 거듭 찾지 않으면 안 되는 기준으로 인도하여 가는 것이다. 그 기준이야말로 지금까지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의 재림 때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은 배우고 있는 것이다.

제1이스라엘은 제1 아담 해와의 자손으로서 또다시 타락한 아담의 길을 가고 말았다. 그래서 제2이스라엘의 중심으로서, 제2 아담으로서의 사명을 다하려고 오셨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가셨으니까,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를 배워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탄 때문에 우리 선조들이 섭리상의 목적 완수에 따르지 않는 그 조건이 역사에 결려서 지금까지 흘러 왔다고 하는 것은 역사가도 모르고 종교가도 모르는 것이다.

거기에서 제2의 세계무대를 중심으로 장래의 이스라엘권을 만들고자 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제2의 섭리인 것이다. 그리하여 제2이스라엘의 세계권(世界圈)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것은 영적인 것이다. 사람은 원래 영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영육 함께 이루어졌다.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세운 것도 영적 천국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로마를 굴복시키고 세계를 답파(踏破)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한 지상천국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 시대에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수한 지상천국을 다 이루었을 것이다.

지상천국은 무엇인가? 그 생활권내에 하나님의 신앙기준이 백 퍼센트 나타나는 세계이다. 희망 자체인 중심인물을 중심하고 움직이는 세계인 것이다. 하나님의 심정이 누구에게도 나타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한 곳이 지상천국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사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님은 과거를 돌아볼 때에 자기가 만약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을 용서치 않는다면, 하나님은 재연장섭리를 하실 수가 없게 되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은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것을 잘 알고 계셨다.

따라서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심정은 ‘하나님이여, 나를 쳐서 새로운 역사를 향해 출발할 수 있는 인연을 남겨 주십시오. 현세의 이스라엘 선민이 망함과 동시에 전인류가 망하게 되지 않습니까. 아무쪼록 제2이스라엘권을 남기시어,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고하여 쌓아오신 기대를 남기어 주시옵소서. 내가 없이는 새로운 미래의 주권이 점점 어둠 가운데 빠져 전인류는 하나님도 무엇도 알 수 없게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런 단계에 끌려가고 말겠지요? 그러니 미래의 세계에 하나님이 바라시는 등불로 남아질 희망을 남겨 주십시오’라고 하는 심각한 마음이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 33년의 생애를 살고 하나님 앞에 나왔을 때는 과거에 사명을 다하지 못한 예수님 자신의 회개의 시간이었다.

‘역사상의 선조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던 예수님, 그들의 잘못은 예수님이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면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을 남길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그날의 죄과를 그대로 하고 연장시켜 제3의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과 기대(基臺)를 바라시며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제2의 패전으로 인하여 제3의 싸움을 위한 준비기간이 된 것이 지금까지의 세계에 발전해 온 제 2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즉 기독교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면 뒤에 남아진 것은 무엇인가? 제3의 아담의 가치를 담당하고 천지창조 본래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또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신앙 기준과 절대 희망의 기준과 절대 심정의 기준을 최후의 역사의 첨단에 다시 세워, 세번째의 책임을 다함으로써 하나님이 본래 희망하신 재출발을 하려고 하는 것이 오시는 바의 재림의 길이라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알지 않으면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