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9집: 참된 중심 1968년 05월 19일, 한국 마산교회 Page #259 Search Speeches

인간은 누구나 참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어

자 그럼 얘기를 할께요. 얘기를 해보면…. 마, 죽는다는 얘기 하면 좋겠어요, 사는 얘기 하면 좋겠어요? 「사는 얘기요」 한국 사람이 `아이고, 좋아서 죽겠다!', (웃음) `아이고, 슬퍼서 죽겠다. 아이고, 어이할 건고? ' (웃음) 그러지 않아요? 거 한국 사람이 참…. 이거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좋아서 죽겠다고 하고 싫어서도 죽겠다고 하고 그래요. 왜 `죽겠다' 하고 전부 다 `죽겠다'를 갖다 붙이느냐 이거예요. 생각해 봤어요, 그거? 아마 그걸 생각할 때, 아마 죽는 다는 걸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할 줄 모른다구요, 우선은. 좋은 일보다, 좋은 일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의 형태가 벌어져요. `화―, 좋다!' 이러면 될 텐데. 어떤 면에서 보면 지극히 비참한 생각도 나고 말이예요, 또 일면 종교적으로 보면 새로운 희망도 깃들어 있어요.

자, 그런 걸 볼 때…. 우리 말에도 그런 말이 있는데 죽는 얘기를 할까요, 사는 얘기를 할까요? 「사는 얘기가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는 얘기요? 「예」 그러면 재미있게 사는 얘기 해줘요, 못사는 얘기 해줘요? 「재미있게 사는 이야기…」 재미있게? 그러면 부부끼리 재미있게 사는 얘기 해줘요, 나라 살림 잘하는 걸 해줘요? 「전부 다 재미나는 얘기요」 마, 재미있는 얘기보다도 좋은 얘기 하는 게 더 좋아요.

제목은 뭐라고 할까요? 제목을 하나 정하고 얘기하지요. 그냥 얘기하면 여러분들이 들어 보고 그냥 잊을지 모른다구요. 그래서 제목을 한번 적어 봐요. 여자가 아마 이런 중심을 좋아할 거예요. (판서하심) 뭔지 알겠어요? `참된 중심'이다! 참된 중심. 참된 중심이라면 참에도 뭐 중심이 있느냐,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렇다는 거예요.

아, 이 땅 위에 사는 모든 인간이나 동물계를 봐도 참된 것은 다 좋아하는 거예요, 거짓은 다 싫어하는 거고. 참은 자기를 보호해 주는 거요, 참은 자기를 위해서 있게 되는 것이요, 거짓은 전부 다 자기의 환경을 헤쳐 버리고 자기의 모든 위치를 파멸시켜 버리고 만다 이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을 전부 다 그리워하는 거예요. 그리고 역사과정을 두고 볼 때에도 참 양심을 갖고 나온 사람일수록 참을 추구했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이 개체 인간을 두고 볼 때에도 참을 중심삼고 살려고 한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참되라고 호소하고 몸뚱이는 그 반대로 끌고 가요. 그걸 다 알 거예요.

자, 그러면 참된 것이 있는 동시에 이 땅에는 참되지 않은 것이 있다 이거예요. 오늘날 소위 어떤 사람들은 `전부 다 음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참된 것이 있으면 참되지 않은 것이 있어야 될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지만 음양이라는 것은 상극적인 것이 아니예요. 상대적인 요소를 가지고 음양이 벌어지는 거지요.

참과 거짓은 상극적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 하나님이 참되시다면 참되지 않은 사탄이 있어야 될 거 아니냐?' 한다구요. 사탄과 하나님을 두고 볼 때에 이건 상대적이 아니예요. 사탄은 하나님이 주체적인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주체성을 들고 나온다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이것은 상대적이 아니다 이거예요. 음양이 아니다 이거예요.

음양이라는 것은 하나의 주체가 있으면 상대가 있어야 돼요.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 입장이 되어야 상대적 조건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거짓이라는 것은 참과 상응 상통할 수 없다 이거예요. 상호 화합할 수 없고 화할 수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참된 것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데, 참된 것이 있어야 될 것인데 참되지 않은 것이 있게 되었다! 그건 뭐 우리 일상생활에서 잘 느끼는 바예요. 우리 일상생활에서 여러분이 잘 느껴요.

그러면 먼 것은 던져 버리고 여러분 자신을 두고 볼 때, 지극히 제일 가까운 내 자신을 두고 볼 때에 여러분 자신 가운데는 참된 것과 거짓 것이 교차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건 부정 못 할 거예요. 진짜 부정 못 할 거예요. 보면 말이예요, 우리 양심은 그래도 참된 것에 따라가요. 또 그 반면에 몸뚱이는, 몸뚱이는 어때요? 몸뚱이는 이거 참된 것을 따라가려고 해요, 양심에 반대되는 길을 따라가려고 해요? 양심과 이 몸뚱이, 이 마음과 몸은 언제나 하나되어 있지를 않아요. 상반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