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불쌍하셨던 예수님 1964년 05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1 Search Speeches

예수님은 이 땅 위- 와서 어떻게 살았느냐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와서 어떻게 살았느냐? 욕을 먹으며 쫓겨 다녔습니다. 이 마을에서 몰아내면 저 마을로 피하고 저 마을에서 몰아내면 이 마을로 피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은 4천년 동안 준비한 터 위에 오셨던 메시아가 해야 할 생활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이 땅에 와서 그렇게 생활하기를 원하셔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그런 자리로 보내셨겠습니까?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메시아로서 이 땅에서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메시아로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심정은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이끌고 나와 가나안 7족을 전부다 쳐부숴야 할 사명적인 책임을 느끼던 모세의 심정보다도 더 간절했습니다.

예수님은 전세계의 사탄 국가들을 전부다 쳐서 하나님편으로 복귀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원수를 갚고, 만민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메시아로서 이 땅에 온 예수님의 본래의 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생활무대가 어떠했습니까? 비참했습니다. 유대 민족의 어떤 대제사장이나 교직자, 혹은 그 시대의 어떠한 사람 입장만도 못했던 예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있을 곳이 없어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내 부모가 누구뇨? 내 형제와 내 누이가 누구뇨?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가 형제요 부모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뜻대로 하는 부모를 찾고 아버지 뜻대로 하는 형을 찾고 아버지 뜻대로 하는 동생을 찾기 위해 헤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이 있었느냐? 종족과 민족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고 있을 때 동생들로부터 반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수는 또 마리아에게도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 2:4)"하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심상치 않은 말씀입니다.

요셉 가정에 태어난 예수는 그렇듯 불쌍한 신세였습니다. 예수가 태어날 때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천사를 보내 예수의 잉태를 예고해 주던 그때의 심정과는 판이하게 변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예수를 가만히 보니, 그는 어떠한 아이였느냐? 성신으로 잉태되었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긴 들었지만, 의붓아들이란 말입니다. 요셉의 마음이 그렇게 변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어느 때나 뜻을 위하는 충절의 마음을 갖고 예수의 30여 평생의 노정에서 예수를 모셔 주고 예수를 위해서 기도하는 입장에 서야 했지만, 그는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고 오히려 예수님을 구박했다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의 명절이 되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동생들에게는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주고 싶어했으나, 예수가 하나님이 택해 세운 아들이라하여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을 유난히 후하게 주려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서글프고 분한 생애 노정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에게 까뀌가 웬말이며, 톱이 웬말이며, 대패가 웬말입니까? 메시아가 목수의 조수라니요? 하나님과 더불어 만민의 운명을 책임지고 개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할 준비 기간에 목수 생활이 웬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