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집: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종교 1972년 03월 0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스카티시 라이트템플 Page #167 Search Speeches

인간의 타락과 종교의 가르침

우리 조상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분을 중심삼고 그 후손은 전부 천국가게 된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세계에서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세계에서는 기도도 필요 없고 구주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지옥도 안 생겨난다는 거예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 땅은 지상지옥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이 계시다면…. 타락은 어떻게 어떻게 되어졌느냐 하는 것은 내일과 모레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은 시간 관계상 이야기할 시간이 없습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이 지으신 물건은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하나의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되어야 할 터인데도 불구하고, 결과적 존재인 우리 자신들을 두고 볼 때 우리 자체는 두 가지 목적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뿌렸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적으로 거두어질 때가 끝날인 것입니다. 그 현상이 열매 맺힐 때가 된 거예요. 그래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그냥 둔다면 하나님은 없는 거라구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구해야 됩니다. 아들이 죽었으면 다시 살리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것을 구하는 기반을 세계적으로 만들어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사람이 얼마만큼 떨어졌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 자리를 상실해 가지고 여지없이 떨어졌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종도 못 되리만큼 떨어졌다는 거라구요. 거기에서 끌어올려 가지고 양자의 자리로, 양자의 자리에서 아들의 자리로, 아들의 자리에서 부모의 자리로 하나님은 끌어올리는 운동을 하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시는 역사시대에 있어서 수많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돼요. 그 종교 가운데는 세계적인 대표로서 종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가 있고 양자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가 있고 아들적인 사명을 하는 종교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이 이러한 종교를 세워서 교육을 하시는 데는 어떻게 교육하시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마음과 몸, 이 둘이 싸우고 있으니 한쪽 편을 굴복시키는 작전을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종교든지 몸을 치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종교는 참된 종교가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몸을 굴복시키는 첫째 방법입니다. 그 다음 둘째 방법은 뭐냐? 몸과 마음이 일대 일로 비슷비슷하니까 왔다갔다하는 놀음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들이 몸을 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비슷비슷한 싸움을 하는 여기에서 마음 편에 힘을 두 배, 세 배 강하게 주입해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몸뚱이를 끌고 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힘을 주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는 심정적 일치점을 하나님은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척 들어 보면 하나님은 완전히 사랑의 독재자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랑하면 그렇게 사랑해 주겠다는 말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자리에 못 선 것을, 사랑의 인연을 통해서만 그런 악을 제패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강한 힘이 오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문제가 아니라구요.

여러분,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하나님의 자식과 하나될 수 있는 사랑의 체험이 얼마나 강할 것이냐? 생각해 보라구요. 이렇게 되면, 즉 몸뚱이를 사탄세계에 못 가게 하고 여기에 끌고 와서 습관만 들이면, 하늘이 찾고자 하는 본연의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모든 것을 역설적으로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그게 왜 그래야 되느냐는 거예요. 결국 하늘의 생명을 찾으려면 몸뚱이를 죽이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서 이 몸뚱이를 살리겠다고 하다가는 하나님을,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몸뚱이는 높아지기를 좋아합니다. 자기 배를 위하려고, 자기만을 위하려고 하는 것이 몸뚱이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인간에게 금식을 하라, 절제를 하라, 몸을 쳐라 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있어서 종교의 가르침이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오늘날 역사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기관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역사적 입장에서도 하나님을 인정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들이 문제가 있을 거예요.

여기 워싱턴이면 워싱턴에 꺼떡했다 하면, 뭐 뉴 에이지니 뉴 프런티어니 해 가지고 별의별 사람이 다 왔다고 합니다. 뭐 감리교면 감리교가 나올 때 그랬고, 몰몬교의 조셉 스미스면 조셉 스미스를 중심삼고 그랬고, 전부 다 자기가 뉴 에이지라고 말했기에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분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워싱턴 신문에도 나고 하는 미스터 문이라는 사람도 옛날과 마찬가지로 다 그렇고 그렇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찾아 올라가는 섭리를 해 나왔기 때문에, 세계적인 대표의 종의 사명을 짊어지고 온 사람 다음에 양자의 사명을 짊어진 사람이 나와야 할 때에 가서는 반드시 새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계가 높아진다는 거예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내용은 비슷하다는 거라구요. 그러면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최후에 부르짖는 새 시대에 와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들을 중심삼은 종교이념이 아니라 부모를 중심삼은 종교이념이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중심삼은 종교시대가 오게 될 때는 마지막 시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필코 인류를 구하려고 섭리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 중에 어느 종교가 제일 중심된 종교냐, 최고의 종교냐 하는 것을 우리는 선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중심삼고 알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형태를 중심 삼고 찾아내야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