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집: 가정 1969년 05월 1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50 Search Speeches

선생님의 유-을 상속받아야 할 통일교인

세계의 곳곳을 다닐 적마다 외국사람들이 선생님을 붙들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때, 기쁜 반면에 슬픈 심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 가운데 그들이 나를 그리워하고, 내가 떠난다고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 인연은 어디서부터 나왔느냐? 6천년 전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죄의 전체를 책임지고 하나님의 품을 떠날 때 눈물을 쏟고 갔으니, 그때의 절망으로 갈라졌던 인류 역사가 환희의 소망 가운데 만날수 있기 위해서는 이 땅 위에 울음 바다가 생겨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탕감복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고 동서양의 문화를 초월하여, 그분이 눈물의 교차로를 갈 때 나도 가고, 그분이 죽을 때 나도 죽겠다는 결심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무엇때문에 그렇겠습니까? 선생님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사회로부터 비판만 받아 왔고, 한국 민족 앞에 이단자의 명찰을 달고 있는, 아무것도 바라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단 하나 내세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위해서 통곡하지 못하는 인류 앞에 통곡할 수 있는 그 마음과, 매맞지 않으려는 자 앞에서 매맞을수 있는 마음, 그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갖춘 바의 재산이요, 또한 물려 주어야 할 위업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모르는 가운데 민족을 위해 눈물 흘리고, 남모르는 가운데 세계를 위해 고민할 수있는 마음밖에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넘겨 줄 위업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내가 몰리고 쫓김받는 그 길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단자라는 간판이 붙어 있지만 새로운 역사를 세우기 위해 그 길을 가야 됩니다. 전통을 부활시키기 위한 길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후퇴하거나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습니다. 의심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도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처자가 그리워도 가야 됩니다. 배반하더라도 가야 됩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칠 수 있는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럴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불쌍한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나를 통하여 위로받으셔야만 하는 그 하나님이 얼마나 불쌍한지를 여러분은 알아야됩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는 이런 역사의 한 모퉁이에서 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달려 나가 이 악한 세계가 뒤넘이칠 때까지 동기를 일으키고 사정을 일으켜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나와 세계가 하나되어야 승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의 배후에 연결되어야 할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내일의 사명을 다짐해야 됩니다. 이 세계가 그러한 나를 필요로 하고 또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는 다 망합니다. 사망하고 맙니다. 죽어서 오른편 강도가 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있다면 우리가 자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리가 가르치는 바의 기준은 죽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죽는 자리에 세움 받는 것이 소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애를 바쳐서 기반을 닦아 나왔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는 길은 그러한 슬픔의 길이 아닙니다. 그런 슬픔의 길은 다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서렸던 슬픔의 운명은 사라졌고, 어디 가나 반대의 깃발 앞에 처하던 그런 때는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이제 상속받기 위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아벨이 되기 위해서는 가인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아벨에게는 그러한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책임을 일생에 못하거든 후손을 세워 몇대를 거쳐서라도 이것을 했다고 하는 조건을 세우고 가야 할 것이 여러분의 갈 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