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집: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 1957년 06월 2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5 Search Speeches

모세와 예수님의 사명과 유대민족의 불신

우리는 하나님께서 섭리의 뜻을 세우시고 2천년 동안 갖은 수고를 하심으로써 찾아진 한분이 야곱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야곱 이후 4백 년의 역사노정을 거쳐 하나님은 야곱이 세운 일대복귀의 기준에서 민족복귀의 중심인물로 모세를 세우셨습니다. 이리하여 오랜 세월 동안 섭리해 오신 하나님의 전체섭리의 결실체로서 모세가 찾아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책임을 완수하면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 속에 맺힌 원한까지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러한 조건적인 입장에서 민족의 대표로 세워졌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전 역사를 섭리하셔서 얻은 결실체로서 민족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택함받은 모세는 역사적인 원한을 탕감해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의 모든 서러움을 풀어 드려야 하고, 민족적인 서러움도 책임져야 할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바로 궁중생활 40년, 미디안 광야 40년, 도합 80년 동안 성심을 다하여,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이스라엘 선민권을 잃지 않고 지조를 세워 나왔습니다.

모세는 바로와 상대하여 싸우던 그 당시에도 하늘이 바라시는 뜻만을 대할 수 있는 지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또, 모세는 민족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자격을 갖추었고 사탄편과 대결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으나,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이스라엘민족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바로를 수차 강팍하게 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러면, 모세를 대하는 이스라엘민족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그들은 모세를 하나님께서 수천년 동안 수고하시며, 또한 그의 선조들이 수천년 동안 노력을 하면서 모든 것을 다 주고 모든 것을 다 희생시켜 찾아 세워진 하나의 중심인물로 알아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희생시킨 댓가로 찾아진 모세인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60만 대중이 쓰러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이 국가와 세계를 대표하여 세워진 모세 개인의 가치를 민족 전체의 가치로서, 혹은 인류 전체와 동등한 가치로서 느끼고 그와 하나되었더라면 그 민족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 이후 수천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선지자들이 이 땅에 오신 목적, 또 세계를 대표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의 수고와 탄식을 대신하기 위함이요, 인간과 만물의 탄식을 대신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예수님이 만민을 대표하여 나타난 조건적인 분임을 알았습니까? 예수님이 4천년 동안 탄식해 오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탄에 대해 승리의 조건을 세워놓을 분이라는 것을 누가 알았던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이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탄식과 인간의 탄식, 그리고 만물의 탄식을 해원시켜 줄 수 있는 그 한 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분과 일체의 관계를 맺어야 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못한다면 여러분에게서 소망도 하나님의 영광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갖고 오셨던 분이 예수님이었는데,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수고하셔서 택해 놓은 이스라엘민족, 유대교단은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그들이, 오신 메시아, 하늘과 땅에 맺혀있는 탄식을 해원할 한 중심을 불신하고 그분 앞에 죄악의 반기를 들었던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의 서러운 역사와 이 서러운 역사를 해원해야 할 천륜의 내용을 아는 백성들이 있었던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을 때, 오른쪽 강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할 것이 아니라 좌우를 지켜보던 성도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러한 책임을 감당한 제자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이 그러한 책임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인간의 탄식을 해원시켜 줄 수 있는 한 존재를 이 땅 위에 보내시기 위해 수고하셨고, 인간은 그러한 분이 나타나기를 바라나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역사인 동시에 인류역사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이런 사명적인 섭리관에서 보게 될 때, 모세는 애급에서부터 이스라엘민족을 이끌고 가나안땅에 들어가 가나안 7족을 멸해야 할 운명에 놓여 있었고, 예수님은 모세가 세운 그 민족복귀의 기대 위에 세계복귀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막이나 광야와 같은 이 땅, 바로궁중과 같은 이 사탄세계에도 그러한 예수님의 뜻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이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능권을 가지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7족을 멸하고 천국을 건설해야 할 것이었는데 그것을 못하고 광야에 머무르게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직접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머무르게 된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광야노정에 있었던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모세와 분리되었던 원한의 조건은 무엇이었던가? 오늘날 여러분들이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민족 중에 원수의 품에서 살던 애급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하는 무리가 나타나 모세의 가는 길을 가로막고 천륜의 길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처음 모세를 앞세우고 이스라엘 60만 대중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는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민족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민족이 지게 되어 일체의 관계를 이루었으나 나중에 달라졌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