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집: 지도자의 기준을 갖춰라 1991년 10월 23일, 한국 한남동 공관 Page #70 Search Speeches

선생님의 고향을 생각하" 마음

고향이란 것이 뭐예요? 그 오색한란한 옛날 인생을 백 퍼센트 전수해 줄 수 있는 그것이 고향의 정서입니다. 그런데 다 흘러가 버리고, 산천도 흘러가 버리고, 도시도 흘러가 버리고, 사람도 흘러가 버리고, 그게 무슨 고향이에요? 자기 기억에 남아 가지고, 언제든지 가면 자기가 놀던 큰 나무가 있고, 뜰이 있고, 놀던 그 바위가 있고, 다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들어갈 때는 희망을 가지고 갔는데, 가서는 낙심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2 고향이라도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비참한 거야, 이게.

그래, 내가 이제 고향 간다고 하면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옛날에 내가 명수대에 있었을 때, 그때는 길이 얼마나 훤한지 모른다구요. 그러니까 옛 정서를 남기던 그 인상이 정서는 살아 있는데, 인상은 다 꺼져 버렸다 이거예요. 그 정서는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사랑하던 여편네, 그 정서를 중심삼고 전부 다 이렇게 이상을 갖고 살다가 죽게 되면 인상은 스러지게 되지만 정서는 스러지지 않아요. 1년 2년 해가 지남에 따라서 잃어버리는 거야, 이게.

이런 등등을 생각할 때에 복귀섭리를 하는 하나님이 통일교회를 대해 나온 것이 몇 년이냐? 통일교회를 대해 가지고 50년 가까운 세월을 하늘의 복귀섭리를 대신해서 역사했다 이거예요. 물론 정서적인 모든 내용도 그 누구도 모르는 그런 인연을 갖고 있지만, 그 정서를 통해 복귀적인 환경을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바라던 하나님 바라볼 때, 그 얼마나 기가 차겠느냐 말이에요.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1972년서부터 외국을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내가 할 일은 다 했거든. 국내에서는 암만 해야 통일교회는 없앨 수 없다는 걸 안 거지요. 또 섭리적으로 볼 때에도 그래. 하나님의 날을 정해 가지고 3년 지내 가지고 그걸 끝내면서 다음에는 세계 시대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미국에 가 가지고 지상에 본격적인 미국 나라를 닦은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감옥을 향해 가는 것입니다. 감옥을 뚫고 나가야 돼요. 감옥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놀음을 해 가지고, 세계적인 정상을 뚫고 이제부터 돌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입니다.

내가 고향 가게 되면 거기서 부모님을 모시고 산야를 달리고…. 활동범위가 크고 넓거든. 보이는 뜰 안에는 안 가 본 데가 없고, 산꼭대기 높은 데는 안 가 본 데가 없습니다. 그 너머까지도 가 봐야 돼요. 그래야 아침에 햇빛에 보이는 저 속에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 머리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을 바라보지, 안 가 보고는 그것도 바라보기 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에나 앉아 있을 때가 없지요? 응? 그런 모든 곳이 선생님이 신앙적인 정서를 길렀던 고향산천이에요. 그렇지요? 고향 물이요, 고향 나무요, 고향 땅이요, 고향 봄바람이요, 자기의 지난 모든 것이 생생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도 생생히 살아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머니 정하는 데 이런 이야기도….

더욱이 요즘 와 보니까 거 다 선생님과 어머니를 중심삼아 하나의 섭리를 했던 것이다 하는 걸 실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 조씨 할머니 그 집의 손녀딸이 가져오고 말이에요, 이래 가지고 다 연결되는 것을 보게 되면 묘하다구요. 이런 등등 모든 전부가 추억에 남는데, 그 추억은 없어지지 않아요.

요전에 가미야마가 어머니한테 와서 하는 말이, 자기가 비행기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말씀집을 읽는데, 거기에 한국에서 하는 이야기가 무슨 얘기냐 하면, 고향이 이상하다 이거예요. 멀리 가면 갈수록 시간이 오래면 오랠수록 더 간절해지고 가까워지는 것이 고향이라는 말이더라 이거예요. (웃으심) 그 말 나오면 자기가 제일 무섭다는 얘기하잖아요? 그건 내용이 그런 이야기부터 시작한다구요.

그거 맞는 말이에요. 멀리 가면 갈수록 오래면 오랠수록 정서가 줄어드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북 동포들이 남한 내려와 가지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 40년 지났지만, 40년 시간이 문제가 아닙니다. 시공을 초월해요. 시일이 길면 길수록, 또 멀면 멀수록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간절한 것이 잠재의식에 있다가 전부 다 옛날이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뭐 꿈 가운데서 보이고, 어머니도 보이고, 이런 게 벌어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거 다 생각 안 하고 지금까지….

그것보다 탕감복귀섭리가 더 급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건 몇백 리를 두고 나가니 그렇지, 반드시 죽기 전에는 그것을 자기가 맞지 않으면 안되고, 필생의 운명을 걸고 바라는 그런 입장에 서게 될 때에, 꿈 같은 것에서 보면 얼마나 섭섭하겠나? 안 그래? 자기 조카라든가 일족이 있으면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고, 일년 춘하추동 계절따라 산야에 경치가 벌어지면 자기 고향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비슷한 기후, 이런 환경이라면 모르지만 말이에요, 정반대인 경우는 더 해요. 여름에는 더운 것인데 추운 데 가면 얼마나 삭막하고 얼마나 고생이냐 이거예요. 거기에 사람이 없고, 친지가 없다면 말이에요, 고향에 날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안 느낄 수 없다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