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집: 나는 이렇게 했습니다 1970년 02월 0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0 Search Speeches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그래서 예수님도,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성경 말씀을 볼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막연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시는 정도를 알아서 사랑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보다 더 구체적인 사랑의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하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는 것은 무슨 말이냐? 참의 길을 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길을 가는 데는 진리의 길을 가야 되고, 또한 생명을 지니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지닌 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날이 가면 갈수록 시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력은 주위 환경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만 사람이면 만 사람 앞에 무엇인가 영향을 미치고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는 인간 앞에 있는 많은 길 중에서 하나님을 중심삼은 그 길이 결과적인 존재로 태어난 인간이 가야 할 필연적인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야 할 그 목적을 마음속으로 추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인생이요, 마음뿐만이 아니라 실제에서 그 마음이 원하는 길을 추구하여 완결지어 놓아야 할 것이 인생 행로임을 알아야 됩니다.

이런 입장의 나인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이 어디에 처해 있느냐? 그런 입장에 일치되어 있느냐 하게 될 때, 거기에 일치되어 있다 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첫출발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민족권내에 들어가 고아와 같은 자리를 거쳐 가지고 중심적인 하나의 결실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본연의 기준까지 끌어 올리기 위해 30여 생애노정을 거쳤지만, 그 결과는 십자가의 죽음이었고, 또 그 죽음으로라도 이것을 해결하려 했지만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갔던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해원성사를 하기 위해 민족의 갈 길을 개척하면서 생애를 바쳤지만, 이것을 이루지 못한 사실을 두고 볼 때에, 오늘날 타락권내에서 태어나서 하나님과 인연도 없는 우리는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가? 어떻게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어떤 조그마한 공적이 있으면 이것을 전체적인 것에 연결시켜 백방으로 나타날 수 있게끔 수습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예를 들어, 여기에 백 사람이 모여 있는데, 그 백 사한 개개인이 맺어 놓은 어떤 선한 결실이 있다 할 때, 그 맺어 놓은 결과에 천태만상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뿔뿔이 놓아 두지 않고 하나로 묶어서 전체적으로 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 사람이 갖춘 그 모든 가치를 자기 가치와 함께 거두어 가지고 하늘 것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합니다. 어떤 분야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학구적인 면에서 세계적인 학자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합니다. 여기에서 그 노력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의 전공분야에 있어서 지금까지 역사상의 많은 사람들이 남겨 놓은 관념과 그 내용을 어떻게 해서든지 단시일내에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 가지고,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대치시킬 수 있는 사람이 공부 잘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6천년의 복귀섭리 노정을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는 입장이라 할 때, 그 길을 전부다 따로따로 떼어놓은 입장에서 가는 사람보다도 그 길을 전부 집약시켜 가지고 이것이 최고의 가치, 즉 '세계에서 최고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것만을 역사과정에서 빼내 가지고 갈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하면 이미 지나온 6천년이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한 노정을 전부 빼내서 한꺼번에 묶어 가지고 최고의 골인지점에 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탕감복귀역사를 거슬러 나가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역시 이런 문제가 대두됩니다. 어차피 가야 할 운명길인데, 가는 데는 어떻게 갈 것이냐? 갑이 가고, 을이 가고, 수많은 사람이 가고 있는 데 그들이 가고 있는 모양에 보조를 맞춰 가지고 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모든 핵심적인 가치를 집약시켜 가지고 내 일대에 연결시켜 어떤 효율적인 결과를 갖추어 나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우리 일상생활에 서도 역시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