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집: 삶의 길을 찾아서 1962년 11월 01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42 Search Speeches

타락한 내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면

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길이 자연히 생겨났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가야 됩니다. 가려면 어떻게 가야 되느냐? 어떻게? 우리가 `아! 그것 좋다' 하려면 좋을 수 있었던 내용을 알아야 돼요. 또, 내가 `좋다' 할 때는 좋지 않았던 자기의 입장을 비교할 줄도 알아야 돼요. 삶의 기준에 있어서 내가 살았다 하는 자리에 들어가려면 `아이구, 내가 죽었다' 하는 자리를 알아야 돼요. 배가 고파 봐야 배부르다는 것을 안다 이거예요.

그런 길이 만일에 나왔다면, 그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내가 어떤 태도로써 가야 되느냐? `그래 그것이 아직도 좋아? ' `응 좋아' 할 때 좋은 게 왜 좋으냐 이거예요. 지금까지는 왜 나빴느냐? 왜 좋았느냐 왜 나빴느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먼저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아무런 두려움도 모르고 살던 아담 해와를 회상해야 됩니다. 타락하기 전의 아담해와를 회상해야 된다구요.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를 회상하는 동시에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하나님을…. 그들은 지금까지 말한 그런 복잡한 세계에서 투쟁해 가지고 하나를 죽이고 가는 입장에서 나왔느냐?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소망에서 나왔느냐? 그들은 둘을 모르는 거예요. 단지 하나님만 알아요. 그럴 것 아니예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요. 이런 입장에 서야 될 것 아니예요?

여러분들도 역시 그런 자리에 나가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야 돼요. 즉, 하나님만 알고 둘은 몰라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들어가야 돼요. 알겠어요? 그래야 타락하지 않았던 아담 해와의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응? 「예」 지금까지 말한 것은 전부 다 지나가 버릴 길이다 이겁니다. 이런 길을 거쳐서 비로소 내가 섰다 할진대 나는 어떻게 되느냐? 타락하지 아니했던 아담 해와의 자리에 올라갑니다. 그 아담 해와는 하나님만을 알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만을 붙들고 두려움을 몰랐던 아담 해와라구요.

여러분 자신들도 앞으로 통일교회의 이념을 알아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만을 알고, 세상 천지가 두려운 게 없어야 돼요. 알겠어요? 「예」 세상 천지가 언제나 두려운 게 없어야 된다구요. 아무리 수많은 원수가 있다 하더라도, 사탄이나 혹은 마귀가 있다 하더라도 두렵지않아! 이 천지 가운데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탄과 마귀가 있다 해도 그 사탄 마귀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놈들!' 하면 그들이 꼼짝 못할 그런 자신을 가지고 하나님만을 모시고 두려움 모르는 그런 자리에 여러분들이 들어가야 돼요. 알겠어요? 「예」 그래야 비로소 소생할 수 있는 길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부터 하나님만을 알고 두려워하는 것을 모르는 내가 돼야 돼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런 자리에서 `아이쿠…' 하고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서러움을 알아야 됩니다. 알겠어요? `아이쿠 하나님을 잃어버렸어. 하나님만을 알던 내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어' 하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서러움을 알아야 된다구요. 타락을 그렇게 했지요? 아담 해와가 그랬으니 아담 해와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된다 말이예요.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역사적인 저끄러짐을 전부 다 제거해서 길이 더럽혀진 것을 다 헤쳐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메시아라는 분이 어떤 분이냐? 이 길을 헤치기 위해서 지금까지 대표적으로 길 닦아 놓은 분이예요. 그분이 닦아 놓은 그 길을 우리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가는 방법에 있어서 어떻게 가야 되느냐? 그분보다도 앞으로 뛰어가서는 안 돼요. 그 길이 열렸다면, 그분의 길을 따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방법에 있어서는 아담 해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하나님밖에 모르던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두려움을 모르는 경지를 여러분들이 알아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세워질 수 있는 길을 찾아가 가지고 그 모든 입장을 느끼는 동시에,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것을 슬퍼할 줄 아는 내가 되어야 돼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되돌아가서 하나님을 잃어버렸던 아담 해와의 슬픔을 느끼는 내가 돼야 된다구요.

그다음에는 , 두려움을 모르던 이 인간들이 타락함으로서 사망이 나를 덮쳤기 때문에 지긋지긋한 공포의 자리에 떨어진 나를 발견해야 됩니다. 그래가지고 두려움이 없었던 나와 공포에 떨어진 나를 비교해 보고,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나와 하나님을 잃어버린 후의 나를 비교해 보게 될 때에 얼마나 차이가 있더냐? 얼마나 원통하고 얼마나 분하더냐? 이것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걸 느끼기 전에는 못 돌아가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