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집: 혈통의 전환 1970년 10월 13일, 한국 중앙수련원 Page #178 Search Speeches

통일교회가 걸어온 복귀노정

통일교회가 둘째로 태어났지만 아벨임에는 틀림없다. 아벨이 성장해서 형님과 대결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을 다 이룬 입장이 현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20년 이전에 합했어야 할 형제의 결합을 국가적 기준에 있어서 할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그때 형제가 결합했더라면 가정은 자연 결합, 씨족도 자연 결합, 민족도 자연 결합, 국가도 자연 결합, 이렇게 한꺼번에 결합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결합 과정에 대한 탕감을 거듭해서 하고, 개인적 아벨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은 많은 고생을 했다. 개인을 중심한 가정적 기반, 개인을 중심으로 한 씨족적 기반, 그리고 민족적 기반으로부터 국가적 기반으로, 이렇게 밀어내서 통일의 무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 희생의 길을 극복하게 하고 지금까지 나왔다.

이 길은 산송장의 길을 더듬어서 온 노정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는 남은 것이 없다. 남은 것이 있다고 한다면 산송장이 남아 있는 것과 같다. 그러한 과정을 통과하여 국가적 기준에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기성교회가 반대하더라도 우리가 우위의 입장에 서 있다. 선생님의 전법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굴복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권과 같은 한국의 기성교회권이 굴복해 들어오고 있다면 유대교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권은 자연적으로 만나는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련소를 지어 내적 교육을 하고, 나라와 손을 잡는 방식으로 양면 작전을 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내적으로는 교회 활동, 외적·사상적으로는 승공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승공을 목숨을 걸고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입장에서 볼 때, 한국은 우리 작전과 결합하지 않으면 갈 길이 없는 기점(起點)에 서 있는 것이다.

복귀노정은 종의 종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생님도 감옥에서 거지와 같은 생활에서부터 시작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까. 복귀는 거지로부터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감옥에서 복귀의 기반을 만들고 처참한 최하의 기대로부터 계속적으로 올라와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것이 국가적인 입장이 되기 전까지는 선생님은 모습을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이상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데 있어서는 국가적 탕감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원리적 관점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선생님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승리의 사나이가 되었으니, 이제부터는 횡적 기준에서 국가적 기준을 중심으로 하여 횡적 기준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횡적 기준을 일본이 시대권에 서서, 지금까지 수많은 예언자나 개척자가 희생되었다. 결국 무엇 때문에 희생되었는가. 남자(아담)의 나라를 세우는 것은 물론이지만, 결국은 해와의 나라를 찾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것에 대해 해와의 나라는 어떻게 감사하며, 보답해야 되는 것일까. 이러한 역사적인 배후의 관계를 가지고 현재의 일본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있어서 혈통적 전환을 대체 누가 했다는 것일까. 이것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해 왔다. 눈물겨운, 이만저만이 아닌 심정적 십자가를 지고 왔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을 이룩한 기준이 서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아무런 공로도 없이 이를 받았다. 축복이라는 것을 통해 새로운 혈통을 받았다. 혈통 전환의 승리권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수천년의 하나님의 노고를 바탕으로 하고 실체를 중심으로 한 선생님의 노고의 생애가 덧붙여져 이루어졌다. 그 위에, 하나님과 선생님을 발판으로 해서 선 사람들이 여러분들이다. 축복받는 다는 것은 악의 혈통을 잘라 버리고 새롭게 접붙이는 것이다. 접붙임으로써 혈통이 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