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려는 복귀역사 1960년 04월 1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70 Search Speeches

영원한 승리자

여기에 몰려온 여러분, 여기 있는 이 사람은 자식의 손목을 잡고 '너는 내 아들이다' 하며 한번도 심정적으로 대해 주지 못했습니다. 남의 손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어디 갈 때 따라가겠다고 해도 '안 돼'합니다. 삼자의 입장에서 대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내 자신이 부모의 심정을 총결산하여 하늘 앞에 공인받을 수 있기 전에는 자식이라고 심정적으로 대해 주면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처자라고 심정적으로 대하면 범죄예요. 부모라고 심정적으로 대하면 범죄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진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똑똑하다는 사람과도 맞설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말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가는 것은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석같은 내용이 있단 말입니다. 철석같은 내용이 있기에 27억이 우는 사자와 같이 떠들어도 일신을 투신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왜? 하늘이 몰아치는 그 길이 가야 할 길임을 알았기에. '친구여 가거라. 사랑하는 부모여 가거라. 처자여 가거라. 내 몸뚱이여 가거라. 다 가거라. 다 가거라' 하며 남은 것은 일편단심, '그대가 울 때 내가 울고, 그대가 슬퍼할 때 내가 슬퍼하고, 그대가 고통받을 때 내가 고통받고, 그대가 몰릴 때, 내가 몰리고, 그대가 밟힐 때 내가 밟히겠다'는 것 뿐입니다. 그것 뿐입니다.

이런 심정에 사무쳐 '아버지!'하고 울부짖는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이 이들에게 심판의 불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허무하고 믿을 수 없는 이 천지에서 누굴 믿습니까? 부모가 영원한 부모가 아닌 것을 알았고, 처자도 영원한 처자가 아닌 것을 알았고, 형제도 영원한 형제가 아닌 것을 알았고,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영원한 세계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고 내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아닌 것을 알았으니 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그리워했습니다. 본연의 부모를 모시는 그 시간을 그리워했습니다. 본연의 형제를 모실 수 있는 그 날은 통곡하겠습니다. 그 날은 벅찬 날입니다. 그 벅찬 마음은 1년으로도 그칠 수 없고 10년으로도 그칠 수 없을 것입니다. 복을 주어도 손을 내밀 수 없는 인간을 바라보고 안타까와하시는 하늘의 심정을 알았기에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이 아니라 하는 길, 몰림받는 길을 왜 걸어왔습니까? 여러분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는 사람이 불쌍한 자리에 처해지면 원망할 것이로되, 소망이 있고 새날에 대한 목적이 뚜렷하여 생명적인 절개를 노래할 수 있고, 심정적으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죽어도 승리자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한이 무엇인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부모로 오셨으나 부모가 못 되고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2천년 동안복귀의 한을 밟고 밟으면서 서글픔의 자리를 피치 못하고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나오신 처량한 하나님이 되었고, 처량한 예수, 처량한 성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본연의 아버지이시며, 예수는 우리의 몸뚱이의 아버지이며, 성신은 우리의 몸뚱이의 어머니입니다. 삼위일체가 어떻다구요? 모두가 다 허황된 패들입니다. 참이 거짓같고 거짓이 참같이 놀아나는 이 세상, 해부를 한번 해 봐야 되겠습니다. 참된 자여! 그대는 나타날 때가 있을 것이니 시궁창에서 밟힌다 해도 그 가치는 드러나리라. 그러니 우리는 참고 이를 악물고 철석같이 단결하여 그의 위신과 체면을 상실치 않고, 실존적인 위치와 그 가치에 있어서 영원하고 존엄하신 모양을 본받아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심정적인 부모가 결정되는 날 세계는 움직여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영계는 그 앞에 제1 이스라엘로 탄생할 것이고, 전세계 기독교인은 제2 이스라엘로 탄생할 것입니다. 이제 그 심정적인 부모를 통하여 축복받은 무리가 제3이스라엘로서 천지에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품고 '할렐루야 아멘. 복귀의 해원이 성취되었노라. 심정의 한이 풀렸노라. 6천년 동안 네 모습을 자랑하며 늠름하고 당당하던 사탄아, 나와 봐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정의 주권자가 땅 위에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위업을 받게 될 때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늠름하고 자신있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심정의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