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집: 정신력과 훈련 1964년 06월 12일, 한국 대구교회 Page #158 Search Speeches

만민을 위한 사'의 보금자리를 닦으려면 희생의 길을 거쳐야

내가 지금도 한국 통일교회의 불쌍한 사람들을 동원해 가지고 이 놀음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미국놈들, 세계의 국제적인 거부들을 내가 앞에 내놓고 이 작전만 딱 해 가지고 갖다 물려 놓으면 여러분들 택시 한 대씩은 뭐 문제없을 거라구요.

이번에도 그래요, 이번에도. 지갑에 돈은 한푼도 없는데 서울 떠난 이래 지금 돈 7,80만 원이 당장에 필요하다 이거예요. 돈은 한푼도 없다 이거예요. 하늘이 필요하고 내가 필요한 거예요. 바람이 불어라 이거예요. 날아오는 거예요. 그거 이상하지요? 그러한 뭐가 있기 때문에 큰소리하는 거예요, 큰소리. 내가 주머니에 돈이 없고 지금 현재 가진 것은 없지만 나는 천하에 뭐 부러운 게 없다 이거예요.

걸어다니는 일이 있더라도 천하에 부러운 게 없어요. 여기 택시니 집이니 세상의 무슨 궁전, 베르사이유 궁전이니, 무슨 궁전이니 하지만 부러운 게 없어요. 세상의 무슨 문화재니 뭐 부러운 게 없다 이거예요. 부러운 게 없어요. 나로 말하면 천하를 다 주고 하늘땅의 모든 것을 다 준다 하더라도 지금 내가 가는 이 생활과 바꾸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게 재미나요. 이 이상 진리가 없거든요. 때로는 욕을 먹고 때로는 그저 뭐…. 여러분이 그래요, 망명자의 신세를 한번 알아보라구요. 패자의 그런 환경에서 한번 처량하게 비오는 저녁 거리를 걸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한걸음 한걸음 사색하면서, 깊은 사색을 하면서 하늘을 부여안고, 땅을 부여안고, 이념을 부여안고 뒤넘이치는 그 자리가 얼마나 멋진 줄 알아요, 여러분들?

야곱 같은 양반들이 자기가 축복을 받아 가지고 이 뜻을 이뤄야 되겠는데 형님이 무서워서 하란 땅으로 도망가게 될 때 그 하란 광야에 엎드려 잠을 자는 그런 환경에 있었으니 얼마나 심각했겠느냐? 하늘땅을 부여안고 소망의 이스라엘과 축복의 아브라함의 손길을 찬양하는 그 마음이 간절했다는 겁니다. 천지는 전부 다 고요한 밤중에 잠들어 있지만 나는 하늘땅에 새로운 호흡권 내의 동맥을 창조한다는 이런 신념이 불탔기 때문에 하늘은 그와 동반자가 되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되는 거예요.

내 몸뚱이는 하나예요. 그렇지만 이 사상은 세계를 제패한다 이거예요. 틀림없어요. 만일에 내가 살아생전 이것을 못 하면 죽어서 다시, 죽어서라도 땅을 중심삼아 가지고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될 기반을 닦고 있다구요, 지금.

예수님은 그런 생각 안 해봤다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자리에 서야 되겠다 이거예요. 나서야 되겠다 이거예요. 죽더라도, 죽더라도 지상에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닦아 놓겠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만약에 죽어 가지고 생전에 계획한 일을 못 다 이루면 영계를 통해서라도 이룬다 이거예요. 그때는 반대하던 사람들이 내 손아귀에 놀아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우리는 나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을 가만히 보면 말이지요, 그런 뭣이 없다는 거예요. 한번 그저 딱 들여다보면 딱 막혀 버려서 그저 숨쉬는 게 답답해요. 어떠한 사람은 척 대하면 말이지요, 앞에 있는 내가 답답하다 말이예요, 내가. 지금 그런 걸 참고 나가는 거예요. 선생님은 그런 센스가 빠른 거예요.

수많은 영계를 통해서 악신과 선신을 분별하는 그러한 역사를 가진 선생님이 그거 모르겠나요? 척 보면 벌써 저건 몇 퍼센트구나 하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렇지만 표시를 안 해요. 왜? 나는 그런 사람들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예요. 그렇잖아요? 더 필요하단 말이예요, 저런 사람보다도. 그렇기 때문에 그런 표시를 안 해요.

그렇기 때문에 알고도 잘 속아 주는 거예요. 심부름도 잘해 주려고 하고 말이예요. 그러니 그 고충을 여러분들은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알 게 뭐예요? 여러분들은 그저, 아이구…. 요전에 축복받은 가정들이 애기들이 커 가니까 살림살이 생각 안 할 수 있나요? 해보라구요, 해보라구. 어떻게 되나? 한 고개를 넘어야 돼요, 한 고개를. 선생님이 가던 길을 넘어야 돼요.

선생님이 처자를 전부 다 버리고 행랑 보따리를 지고 북한 땅을 향해서 출발하던 그런 사정을 알아야 된단 말이예요. 자식을 누구만큼 사랑 못 해서? 하나님이 누구만큼 사랑 못 한 그런 예수였기 때문에 예수를 죽였느냐? 천지에 없는 독생자요 천지에 없는 심정의 대표자였지만, 그런 길을 거치지 않고는 이 만민에게 자비의 사랑의 보금자리를 닦아 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아들딸을 대신 희생하는 그 자리를 택한 거예요. 부모도, 자식이 이다음에 성공하는 날에는 부모도 그 자리에 들어가 가지고 자식을 축수해 주고 찬양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