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집: 추수의 주인 1969년 12월 14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20 Search Speeches

인간의 마음을 충동시키" 힘의 모체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세계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그 세계와 인류는 현세계 이상의 세계, 현인류 이상의 인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세계를 이루는 하나의 민족은 이제까지 있었던 수많은 민족이 규합해 가지고 이룬 하나의 민족 이상의 민족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니 수많은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하나의 주권, 역사과정에 나타났던 수많은 주권을 대신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주권이 나와야 합니다. 수많은 국민이 자기의 국가를 사랑했던 그 이상의 사랑의 마음으로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국민이 나와야 합니다. 인간들은 그러한 것들을 추구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럴 수 있는 동기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의 마음 바탕에서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고 내일을 향하게 하는 자극적인 동기로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은 어디에서 근거가 된 것이냐? 그럴 수 있게 하는 모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주고 받는 데서 나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모든 자극적인 감각도 여러분 혼자서 느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드시 대상의 요건을 통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대상의 힘의 작용에 의해서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작용은 곧 힘인데, 힘이라는 것은 주체와 대상이 없어 가지고는 생길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양심의 작용, 즉 내일의 희망을 위하여 촉구하고 내일을 희망의 무대로 삼고 더더욱 가치 있는 인격을 추구하게 되는 그러한 모든 힘의 작용은 어디서 나오느냐?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인연이 있는 곳에서 나옵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힘의 작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화학작용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요소가 각각 갖추어지지 않으면 절대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손해나는 데서는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대 손해나는 작용은 안 합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의 이 자리를 찾아올 때도 손해를 보기 위해서 왔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맺어 가지고 자신에게 플러스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물리나 화학의 작용을 보더라도 손해나기 위해서 작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모든 존재는 반드시 자기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더더욱 귀한 가치를 갖는, 더더욱 빛날 수 있는 자리를 추구하는 작용을 하게 되어 있지, 자기 자체가 손해를 보기 위한 작용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명동에 간다 할 때, `나는 오늘 몇십 원 손해보러 명동으로 간다' 할 사람 있어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추구하는 그 목적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중심삼아 가지고 거기에 플러스될 수 있는 요건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이 마음 작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이세계의 실상이 그러하거늘, 인간의 마음 세계에서 작용하는 그 자체도 반드시 주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있다는 겁니다. 그 힘이 작용을 하는 데는 혼자서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한 개체에 있어서도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주고받게 되면 거기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또 행복이 오게 되고, 사랑이 싹트고, 희망이 싹틉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의 마음 작용을 추구해 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마음의 본체가 되는 존재가 있을 것입니다. 결과적인 내 자신은 근원적인 존재를 초월해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될 수 있는 하나의 완전한 플러스적 형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그 존재의 이름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는 절대적인 주체요, 그 누구도 당할 수 없는 최고의 존재요, 상대적 요건을 불허하는 중심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