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집: 하늘이 주관하는 세계 1972년 07월 30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5 Search Speeches

비참한 하나님을 ""욱 비참하게 했던 인간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일반 신앙자들은 하나님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요, 절대적인 하나님이라고 찬양은 할 줄 알고 그로 말미암아 행복을 구하기를 바라고는 있는데,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이 되었느냐?

여러분은 불행하게 되면 짜증이 나지요? 짜증이 나요, 안 나요? 짜증 나지 말라고 하더라도 나는 것입니다. 손도 짜증을 내고, 눈도 짜증을 내고, 사지백체가 짜증을 낸다구요.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볼 때, 최고의 이상적인 상대권을 상실해 버린 하나님 앞에 온갖 죄의 누더기를 쓰고 찾아가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이여! 내 죄를 맡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나는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내 죄를 맡아 주시옵소서' 할 때, '오냐' 할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라면 그 하나님은 얼마나 불쌍하겠어요? 얼마나 비참한 하나님이겠습니까? 그거 행복하겠어요?

지금 죽을 지경에 놓여 있는 사람에게, '여보, 나도 이렇게 죽을 지경에 있는데, 이왕지사 당신도 죽게 되었으니 내 죽을 것도 맡아 주소' 하면 '그럽시다' 할 사람 있어요? 그저 고통스러운 자리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친구들이 '여보게 임자는 나하고 둘도 없는 친구가 아닌가. 그러니 이왕이면 고생은 되겠지만 내 고통까지 맡아 주소' 할 때, '오냐, 당신 말대로 하소' 그래요? 친구고 뭐고 다 벼락이 난다고요. '예이, 원수놈아! 네가 내 친구야? 한다는 거라구요. 이 녀석도 아니고 '이놈아' 한다는 거예요. 거꾸로 쥐어박고 다리를 꺾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런데도 오늘날 인간들은 번번이 잘못하고 나서는 '하나님, 나 이렇게 됐습니다'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그런 사람하고 죽자살자고 할 수 있는 인연이 되어 있나요? 이런 것을 생각하게 될 때 기도하기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기도하겠다고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을 부르다가도 자라가 모가지를 내밀다가 위험을 느껴가지고 다시 집어 넣는 것과 같은 처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녜요? 이런 모든 근본 문제를 파헤쳐 생각하게 될 때, 우리가 얼마나 오류를 범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