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너희는 누구의 아들딸인가 1960년 04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30 Search Speeches

최후의 목적지

그러면 하늘이 우리를 세워 놓고 오라 하시는 목적은 무엇이뇨? 천지의 대주재가 소망하시는 귀결점은 무엇이뇨? 참부모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 부모와 한번 혈연적인 인연을 맺으면 하나님을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실존세계를 꿈에도 부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아버지가 계시고 내 생활에 아버지가 계시는 권내로 들어가게 됩니다. 심정적인 그 세계로 옮겨 주는 부모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 하늘이 우리를 오라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슨 도(道)니, 하나님의 섭리니 해도 최후의 목적은 부모를 모시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 가지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부모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부모를 잃은 인간, 고아와 같은 인간, 과부와 같은 인간이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부모로 모실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이 인생의 최후의 목적지입니다.

우리에게는 어차피 넘어야 할 삼팔선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넘어야 할 입장에 처해 있거든 넘자! 가야 되겠다. 가자!' 할 수 있는 무리가 이 땅위에 나와야 합니다. '넘자! 세계를 위해서 나선 걸음이니 가정이 반대해도 넘자! 사회와 국가가 반대해도 넘자! 이 세계의 주의가 반대해도 넘자!' 할 수 있는 그 기준이 되어 있습니까? 못 되어 있다면 패잔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이념에 젖어 있습니까? 아직까지 '내 아들딸, 내 아들딸' 하고 있습니까? 그런 것은 다 지나갑니다. 모든 인류가 다 그러한 기준을 넘어가야 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처자를 죽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왜? 다 끊어야 되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운세는 몰아칩니다. 인간적인 정을 전부 다 믿을 수 없게 몰아넣는 것입니다. 하늘은 깨뜨려 버리기 위해 내모는 것이 아니라 깨뜨리지 않으면 수습이 안 되겠기에 내모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민주주의가 제국주의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보십시오. 악당들이 주권을 갖고 있으면 온 세상이 악당의 세계가 되겠으니, 혁명을 일으켜 가지고 깨뜨려서 민주주의를 세우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들을 대통령으로 세워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것이뇨? 여러분, 이러한 세상에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이뇨? 하늘이 찾아 세우고자 하는 부모의 존재, 충신의 존재, 열녀의 존재를 찾아야 합니다. 그런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각오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먼저 하늘이 세워 주시는 세계의 부모 앞에 나서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나온 이념이 통일이념입니다. 사정으로 통일하지 말고 심정으로 통일하자, 부모의 심정을 본받아 너도 나도 형제가 되어 사랑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부모를 따라갈 수 있는 표본의 인격은 어떠한 것이뇨? 누구를 터전삼아 부모의 그 심정을 증거할 것이뇨? 여기에서 예수님을 봅시다. 그는 이 땅을 소유하고 주관해야 할 위치에 있었지만 배반당했습니다. 선민으로 세운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사랑하는 열두 제자, 나중에는 세 제자까지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땅 위의 소망은 다 끊겼습니다. 땅에 와서 이루려 했던 소원은 다 깨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가지 붙들고 간 것은 부모의 심정입니다. '아버지여, 당신이 찾아 세우려는 세계적인 부모의 심정만은 제가 붙들고 가겠나이다. 몸이 창에 찔리고 못에 박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이 찾으시는 부모의 절개만은 제가 갖고 가겠습니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가지 예수였기에 사망의 구렁텅이로 휩쓸려 들어가는 이스라엘 민족일지라도 복을 빌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영적인 부모의 위치를 세우고 가신 예수였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예수님의 영적인 자녀입니다. 예수는 육신은 때려잡히고 영적으로만 이룬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육신까지 이루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 몸은 하나님이 인정할 수 있는 부모의 피살을 이어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인연이 찾아질 때까지 한스런 노정에서 탄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부모가 그립기 때문에 그 부모가 올 날을 위해 세계는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의 주인공, 하나의 부모, 하나의 세계가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하신 열매며 바라시는 목표물입니다. 여기에 그 부모를 대신하여 설 수 있는 심정적인 후계자가 나와야 됩니다. 심정적인 후계자. 말만 하는 후계자 말고, 모양만 같은 후계자 말고, 좋아만 하는 후계자 말고 부모의 슬픔과 고통을 자기의 소유로 삼아 아버지 대신 고통하고 아버지 대신 슬퍼하면서 심정적으로 하늘 앞에 충효의 도리를 세우려고 허덕이는 후계자 말입니다. 그런 무리만이 하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