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집: 금후의 우리의 자세 1975년 01월 19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 Search Speeches

지금은 시대적 책임을 져야 할 때

선생님의 사명적인 관(觀)을 두고 볼 때, 한국의 대표적인 사람들 앞에 나타나 가지고 '아이고 부탁합니다' 이런 저자세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위신이 안 선다는 거예요. 내가 할 책임을 다하고 하늘의 위신을 갖추어 가지고 나타나야 합니다. 내가 그들 앞에 신세를 끼치면 끼쳤지 그들의 신세를 지는 입장에 서는 것은 하늘이 원치 않는다 이거예요. 그런 관점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 있어서는 공식석상에 한 번도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대중 앞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영적 기독교가 세계적인 기반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이것을 몰아 가지고 육적 기반으로써 한국에 탕감적인 기원을 연결시킬 수 있는 때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 처음 나타나서 공식석상에서 그들을 대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인 차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차원, 역사적인 시점에 이른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냐?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대중을 인도할 단계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아! 선생님, 기분 좋습니다…' 아닙니다. 이제부터입니다.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 아무개라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이제부터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과거에 기도하던 것은 이 고개를 넘기 위한 기도였지만 이제 기도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내게 해당하고 나로서의 책임할 수 있는 길입니다.

지금까지 올라온 것은 역사적인 책임을 짊어지고 역사적 분야의 책임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제 가야 할 것은 시대적 분야의 책임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것입니다. 이편과 저편은 다른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에서 어떠한 내용이 벌어질 것이냐? 통일교회 교인들에게는 어렵다면 지극히 어려울 수 있는 때요. 쉽다면 지극히 쉬울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탕감을 해 놓은 사람에게는 쉬울 수 있는 때요. 탕감을 못 한 사람에게는 지극히 어려운 때라는 것입니다. 그거 이해돼요?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엄벙덤벙 평지에서 놀음하던 거와 같은 때는 지났습니다. 결정적인 때입니다. 결정적인 때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느냐 안 지느냐 하는 것을 놓고 하나님 앞에 담판하던 때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책임을 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을 담판짓는 때예요. 담판은 이미 끝났어야 됩니다. 여러분은 끝났어요?

'뭐 어제와 오늘이 무슨 차이가 있어? 공기도 그렇고, 아침도 그렇고, 환경도 자기 전과 그대로고, 이부자리도 그렇고, 밥먹는 상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전부 다 마찬가지인데 변하긴 뭐가 변해?' 할 수 있지만 다르다는 거예요.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달라야 됩니다. 무책임한 시대가 아니라는 겁니다. 책임시대가 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의 중심적인 표제가 되어 가지고, 주체자로서 하나의 중심형에 서 가지고 전체 환경은 움직이더라도 이 중심은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