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집: 우리는 주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가 되자 1957년 06월 16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2 Search Speeches

예수님과 선지자"이 불신당한 이유

예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탄생할 때 동방의 세 박사, 그들은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이 아니고 그 시대의 점장이들인데, 그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을 때에야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소동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민족은 말로만 메시아를 고대하였지 어느 때 어디에서 메시아를 만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러한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하늘이 보내는 사람이나 천륜이 어느때 어느 곳에 나타나더라도 그를 불신하지 않고 척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현실에 나타나는 모든 사실과 역사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겉으로 보고 비판할 줄은 알았으나 내용은 알지 못했습니다. 즉, 볼 줄은 알았으나 맛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도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줄만 알고, 그 마음을 몰라서도 안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높이 받들 줄은 알지만. 예수님이 비천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지니고 계셨던 분이란 것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 이스라엘민족이 저질렀던 역사적인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스라엘민족을 대신하여 다시 영광의 날을 맞이하게 될 때, 여러분은 이스라엘민족과 어떤 차이점을 가지고 그날을 맞이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중심한 예수님의 행로를 살펴보면, 사도를 위시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기쁠 때 따르던 무리도 있었고 슬픔 때 따르던 사람도 있었으며, 재출발할 때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쁠 때 예수님을 환영할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병이어(五餠二魚)로 5천명을 먹이고 역사적인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여 민족의 마음을 움직일 때는 많은 무리가 그를 옹위했고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희로애락을 같이하면서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어찌하여 전진하는 역사과정에서 주위환경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도중에서 쓰러지게 되었던가…. 이것은 이스라엘민족이 가나안땅을 향하여 갈 때 모세를 불신했던 그 역사 노정을 반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민족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할 때, 그의 뜻과 그가 세운 표준이 민족의 뜻이나 민족의 표준과 달랐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세우려는 모세는 그가 지향하는 목적지가 뚜렷하였고, 방향이 뚜렷하여 1년 후 또는 10년 후의 일을 내다보며 살길을 생각하였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천하고 있었는데, 이에 반하여 이스라엘민족은 그렇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서 이스라엘민족이 떨어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원래 아브라함에서부터 4백년 역사를 거쳐 영광의 한날을 맞을 수 있도록 허락받았던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광의 그 한날을 맞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졌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예수께서는 나아갈 목표와 방향을 뚜렷이 했고, 10년 혹은 20년 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생활권내에서 실현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스라엘민족은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지향하는 방향과 목적이 예수님과 달랐고, 그들의 생활이 영원을 향한 섭리의 뜻과 달랐기 때문에, 좋을 때는 예수님을 환영하였으나, 자기들이 불리하게 되면 서슴치 않고 예수님을 외면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조건적인 목표를 설정했었고, 조건적인 방향을 잡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반기를 들고, 십자가에 달리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또 예수님의 죽음길을 재촉하던 이스라엘민족은 모세를 배반하여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던 불신의 행동을 되풀이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가나안땅을 목전에 바라보면서도 광야에서 40년간을 헤매야 했던 것과 같이 예수님도 2천년간 세계적인 가나안복지의 이상을 바라보며 헤매야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한을 품고 계신 예수님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민족이 예수님을 불신했던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이란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몰랐고, 하늘 가는 길을 직선으로 올바로 인도해 주시는 예수님인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개인만로서의 예수님이 아니라 세계를 대신하고, 민족을 대신하고, 또 자기들의 영원한 생명까지도 책임진 분임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민족이 예수께서 자기들의 생명을 구해 주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았다면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분을 따라야 했었고, 민족을 위해 오신 분인 줄 알았다면 민족을 저버리고라도 그분을 따라야 했으며, 교단과 세계를 위해 오신 분인 줄 알았다면 교단과 세계를 버리고라도 그분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민족이 이러한 예수님의 가치를 모르고 불신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 후 오랜 동안 탕감의 길을 거쳐 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