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집: 회복의 인연을 갖고 오신 예수 1958년 08월 03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61 Search Speeches

예수님의 강림배경과 유대민족의 불신의 결과

역사노정에 예수 한분이 나타난 사실은 그저 우연히 되어진 사실이 아니라 정하신 천륜의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즉, 역사적인 인연과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적인 인연을 이루어 놓기 위하여 예수님은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만일 그 당시에 안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한 개인에 불과하였으나 예수님이 맺고 계신 인연을 전체에 연결시켜서 끌고나오게 될 때에는 인류의 역사적인 인연이 딸려들어오고, 그 당시의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적인 인연까지 딸려들어오게 되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 당시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상과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와 하나님 아버지까지도 그와의 인연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하는 중심적인 사명을 가지고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유대백성은 그때까지 하늘이 약속한 하나의 뜻을 찾아나와 가지고 뜻 가운데 선 것으로 자부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뜻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고, 역사적인 교단을 세워나왔지만 그 교단이 하늘편것이 되지 못하는 입장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또 선민권을 자랑하던 이스라엘민족에 대한 끝날의 약속의 축복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민족적인 소망과 교단적인 소망이 있었지만 천주적인 이념의 주체인 예수를 몰라봄으로 말미암아 여지없이 파탄되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류의 역사노정 위에 대비극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예수는 서글픔이 어린 눈물과 희생의 피로써 이에 대응하였던 사실을 그때 사람들은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외치신 말씀은 그의 간곡한 심정에서 우러나와 부르짖은 진리였습니다. 또 그가 걸으신 30여년의 생애는 자기 일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생애가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소망은 자기 한 개체를 위한 소망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아야 할 유대백성들은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잊고 하늘의 뜻을 이루려고 했던 예수님만이 알고 계셨던 것인데, 이 서러움이 오늘날 우리들의 서러움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신앙자의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이 가신 걸음이 내가 가야 할 걸음이요, 예수님이 염원하는 이념동산이 내가 이루어야 할 이념동산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축복권내에서 지낼 수 있는 하나의 신랑 신부의 이념을 그리워하고 소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이룰 수 있는 어린양잔치를 중심삼아 14만 4천 무리를 품고 이들과 더불어 환희의 노래와 영광을 아버지 앞에 돌리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결국 유대민족의 불신으로 그러한 본래의 소망을 성사하시지 못하고 도리어 갈보리산정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의 간절하고도 비통한 심정을 대변한 간곡한 기도였습니다. 그 간곡한 기도는 자기 일신의 해결책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지하여 잠들어 있는 백성(민족)과 사탄과 사랑하는 세 제자를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망을 가슴에 붙안고 무지한 백성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진 예수님, 천륜을 가로막는 유대민족은 심판받아 마땅한 배역의 종족이었지만 재차 하늘을 향하여 용납의 손길을 바라는 기도를 하셔야만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은 어떠했겠는 가. 더 나아가 십자가의 고난의 노정을 감에 있어서 원수와 같은 무리들을 향하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간곡한 호소를 한 그리스도의 기도는 인간 앞에나 섭리노정 앞에, 또는 천성의 심정 앞에 어떠한 인연을 맺기위함이었던가!

오늘날 우리들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 예수의 심정을 헤쳐 놓고 그 심정을 대하여 머리 숙일 수 있어야 되겠고, 주가 걸으신 걸음을 내가 걷고, 주가 가신 발자취를 내가 따르고, 주가 돌아가신 제단에 내가 충성을 다하여 아버지의 원한을 대신 품을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우리들은 천정의 인연을 붙들고 온 인류와 역사적인 인연을 대신한 예수의 심정을 붙들 수 있는 가를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즉, 예수의 역사적인 인연, 시대적인 인연, 미래적인 인연을 대신할 수 있는 예수의 친구가 될 수 있겠느냐를 자신에게 반문해 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