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집: 자신들이 지녀야 할 위치 1964년 09월 18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43 Search Speeches

하나님의 소망 가운데 세워진 나

이제부터 우리는 출발도 공적이요 과정도 공적이니, 공을 세우는 입장에서 움직여야 한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자신들이 지녀야 할 위치'이다.

아담 해와가 자라던 그 위치는 행복한 위치였으며, 하늘땅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였다. 하나님은 창조이념 전체를 아담 해와에게 걸고 그것을 이루어 주기를 바라셨다. 아담 해와가 완성되는 것은 개체의 완성, 가정의 완성, 세계의 완성을 뜻하는 것이다. 아담과 해와는 자기들의 위치를 모르는 자리에서 타락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를 중심하고 이루어야 할 가정과 세계가 어떠하여야 할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벨을 세우셨으나 아벨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아벨을 부르신 하나님의 소원과 그 사정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오늘날까지 인류의 비참한 역사의 연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아담 이후 1, 600년만에 세워진 노아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은 하였으나, 하나님이 노아를 두고 바라신 그 내적인 심정을 몰랐다. 노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던 120년, 이 120년 기간이 하나님에게는 당신의 심정과 사정을 모르는 노아를 바라보고 마음 졸이는 입장에서는 몇 억년보다 더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또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세워 섭리하셨으나 하나님이 바라시는 뜻과 일치점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내적인 개인,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탕감복귀할 책임을 지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이시다. 그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심정적 주체이시다.

우리는 복귀도상의 종적인 역사를 횡적으로 탕감하여야 할 책임이 있다. 아담 하나가 이루어야 할 기준을 못 이루었으니 다시 가정적 아담, 종족적 아담, 민족적 아담, 국가적 아담, 세계적 아담이 나와서 탕감복귀를 해야 한다. 우리는 종적인 탕감조건을 횡적으로 세워 나가는데 있어서 개인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고, 종족적, 민족적, 국가적, 세계적인 싸움에서도 승리해야 한다.

예수는 이 땅에 와서 과거에 왔다 간 노아, 아브라함, 모세와 역사상의 모든 선지선열들이 못다 한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승리적인 기준을 세워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에 다시 와서 영육 아우른 구원의 기준을 세워 실제적으로 전개시켜야 한다.

우리 앞에는 축복과 대립되는 노정이 있으니 싸워 이겨야 한다. 야곱도 가나안 복귀도상에 있어서 라반과 싸워 이기고, 천사와 싸워 이겨 가정적 이스라엘 기준을 닦았다. 내적 사탄 입장에 선 에서를 굴복시킴으로 말미암아 가정적인 기준을 세웠던 것이다.

예수의 개체가 서기 위해서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가정이 서기 위해서는 종족이 있어야 하고,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이 있어야 하는 것이 복귀섭리의 원칙이다.

오늘날 통일 종족이 서기 위해서는 민족적 기반을 공고히 닦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에서 볼 때, 외적인 이스라엘과 내적인 예수님의 개체와 그 가정이 일체가 되었으면 그때에 세계를 수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왔던 사명을 완수했을 것이었다.

비록 예수님께서 외적인 세계를 실체적으로 복귀하지 못했으나 내적인 메시아의 위치를 상속함으로 말미암아 영적 구원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약의 구원섭리다. 오늘날 기독교의 신도들이 이를 상속 받아 내적 섭리의 사명을 다해야 했지만,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오시는 주님은 개인적인 이스라엘, 가정적인 이스라엘, 종족적인 이스라엘, 민족적인 이스라엘, 국가적인 이스라엘,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세워 나가야한다.

예수님은 아담의 입장을, 오시는 주님은 예수님의 입장을 재현시켜 그 범위를 넓혀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역사노정에 있어서 원수에게 잃어버린 자녀를 찾으시기 위해서 종의 자리를 거쳐 양자의 자리, 직계의 자리를 세워 나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