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집: 심각한 순간 1986년 03월 09일, 한국 본부교회 Page #154 Search Speeches

알게 모르게 -사 속으로 지나가 버리" 심각한 순간"

우리 개인생활에 있어서나 가정생활에 있어서나 사회생활, 혹은 국가생활 세계생활에 있어서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심각한 시간들은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복귀섭리역사를 더듬어 보더라도 아담가정에 있어서 심각한 순간이 어느때냐 하면, 해와가 타락하게 되는 그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인류에게 비애가 깃들고, 또 천상에도 비애가 깃들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을 우리 인류의 시조 되는 아담 해와는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 가인 아벨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으시지 않았을 때 가인은 동생을 사랑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그 순간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비참한 역사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노아를 보더라도 노아 자신이 방주에서 내려 술에 취했을 때에, 만일에 노아가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또 함이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았더라면 역사는 딴 방향으로 흘렀을 것입니다. 인류역사의 근본적인 방향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모세를 두고 봐도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한 번 쳐야 할 것을 두 번 침으로 말미암아 인류역사가 비참하게 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예수가 십자가를 지게 된 먼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세례 요한을 보더라도 세례 요한이 예수를 증거할 때, 그 순간에는 기쁠 수 있는 한 인연을 이루었지만 그 증거한 것을 자기가 실천해야 할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지난날을 회상하고 현재의 입장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생각할 때에, 세례 요한 자신을 중심삼고 생각함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역사적인 과오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4천 년 역사를 통해서 준비하시고 수많은 민족과 유대교가 바라고 나오던 소망의 중심이 꺾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역사시대는 우리들이 알게 모르게 심각한 순간을 거쳐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전세계는 그야말로 심각한 정상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좌우가 격렬하게 대치된 이 사회에서 모든 나라들과 모든 민족들, 혹은 우리 개인들이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최대의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인류 전체가 합해서 결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그러면 그 결정은 누가 해야 되느냐? 문제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역사의 모든 전환시기에 있어서 찾아오는 그때를 누가 대해 나가야 되느냐 하면, 역시 사람이 이것을 대하고 나가야 됩니다. 그 사람 가운데는 어떤 나라를 대표한 사람, 어떠한 지도층을 대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정자로 말하면 세계를 책임진 미국의 대통령이라든가 혹은 소련의 수상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심각한 순간에서 한 번 잘못 결정하게 될 때에 인류역사에는 비참사가 벌어집니다.

외적인 세계도 그렇지만 내적인 섭리역사 세계도 역시 발전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은 개인적인 시대, 가정적인 시대,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시대, 더 나아가서는 천주적인 시대로, 나중에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랑의 세계까지 연결되는 발전 도중에 있는 것입니다. 발전 도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무는 매일매일 탄소동화작용을 해 가지고 영양소를 보급하여 자라지만, 자라는 그 모양은 다 같은 것입니다. 매일같이 순환하는 환경을 거쳐 나가면서 잎이 생겨나고 가지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잎이 생겨나는 그때하고 가지가 생겨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잎은 잎으로서의 그때를 맞아 가지고 거기에 적당한 영양소를 보급받아야 되고, 가지는 가지로서 자라 나가는 데 있어서 적당한 영양소를 보급받아야 됩니다. 그와 같이 순간적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일상의 상습적인 생활과도 같은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밥을 먹고, 직장이라든가 혹은 자기가 종사하는 방향을 따라서 하루의 생활을 하고, 저녁에 돌아오는 그와 같은 생활이 나날이 계속됩니다. 그렇지만 계속되는 그런 날 가운데서 여러분의 비운의 역사, 혹은 희로애락의 역사는 전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진이 향상적 전진이냐 혹은 후퇴적 전진이냐 하는 문제를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