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집: 본향을 찾아가는 인생길 1959년 07월 05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18 Search Speeches

본향을 그리워해야 하" 우리의 현실

그런 곳이 심정을 가지고 있는 인간 개개인이 살 수 있는 곳이요, 그러한 본향이 인류역사의 종말시대에 소개되어야 할 곳입니다. 그렇지 못할진대 오늘날 이 세계는 수습하려 해도 수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소개할 수 있는 어떤 이념이나 주의를 논리적인 견지에서 세우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본향의 세계, 본향의 땅, 본향의 형제, 본향의 가족, 본향의 친척, 본향의 동산이 그립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 중에서 `나는 그런 본향을 찾았노라'고 장담할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그 본향을 찾아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구주로 오시어 `나를 따라오라' 하시며 그 길을 제시해 놓았지만, `나와 더불어 살자' 할 수 있는 본향의 동산을 이루어 놓고 살다 가지는 못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인류를 끌고 나오시지만 오늘날 이 자리에서 `나와 더불어 살자'는 말씀을 못하시고 `우리들이 바라는 본향의 동산에 가서 살자'고 말씀하시며 이러한 섭리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랬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그랬듯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오늘날 여러분 자체 자체도 마찬가지의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본향을 바라면서 허덕이며 걷고 있는 여러분, 그날을 맞아 즐거워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그날을 맞이해서 나는 행복하다고 노래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날을 즐기셨느냐? 하나님도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날을 맞게 해주는 어떤 주의가 있느냐? 그것도 없습니다. 하늘도 즐기지 못했다는 거예요. 천지의 내용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지 운세를 이탈하여 살 수 없는 양심을 가진 인간은 공통적인 목표와 이념 밑에서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의 심정을 체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도 가면 갈수록 행복의 마음은 간절하나 행복 그 자체는 여러분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마음으로 간절히 고대하며 발버둥쳐서 그 목적지에 당도해 온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것은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아득한 내용으로서 여러분의 마음세계를 비추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어차피 가야 할 과정적인 현상을 밟고 올라서 가지고 행복의 본향을 노래할 수 있는 개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만우주를 대해 나와 더불어 화동하고 나와 더불어 노래하며, 나와 더불어 행복하자 할 수 있는 그 한날을 맞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역사의 목적이요, 어떤 종교가 있다 할진대 그 종교의 목적입니다. 또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그 창조주도 역시 그러한 목표밑에서 인간을 내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섭리권내를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인 고로 어떤 개인이라 할지라도 그 역시 마찬가지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다같은 인생길을 가고 있는 이 마당에, 여러분, 잘났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 환경이 좋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 가진 세력이 당당하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그것 가지고 인생의 갈 길을 해결짓지 못합니다. 본향의 세계를 해결짓지 못해요. 왜그러냐? 오늘날 인류가 지향하는 그 방향성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으로 해결되게 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하늘이 이런 입장에서 섭리를 해 오셨다 할진대 도리적인 면이나 진리적인 면에서만 우리에게 방향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지 심정적인 면을 중심삼고 우리의 갈 방향을 가르쳐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심정적인 면에서, 실생활에서 실감할 수 있는 행복과, 생활하면서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평화와 자유를 가르쳐 주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것들을 아득한 소망의 한 초점으로서 바라보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인 연고로 우리에게는 잘나나 못나나 슬프나 기쁘나 하루의 생활에서의 자유는 있을는지 모르고, 일년의 생활에서 감정의 자유는 있을는지 모르고, 또 일생에 있어서 생활적인 감정의 자유는 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를 중심삼고 흐르고 있는 역사적인 심정과 생활과 이념과 관(觀)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은 그렇게 볼 것이며 또 그렇게 보아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