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집: 우리의 책임 1971년 02월 14일, 한국 중구교회 Page #155 Search Speeches

고생과 시련을 각오하라

그러려면 그가 가는 길에 핍박이 없을소냐? 그가 가는 길에 눈물이 없을소냐? 그가 가는 길에 중상모략이 없을소냐? 그가 가는 길에 원수의 화살이 안 날아올소냐? 그가 가는 앞길에 함정이 없을소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존재해 있는 어떤 한 나라가 망할 즈음 비운의 천사 가운데 나타난 그 어려운 고비 이상의 길이 내 앞길에 첩첩 태산준령처럼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자기의 팔자소관으로 알고 '나는 할수없이 이 길을 안 가면 안 된다' 하며 맞이해야 합니다. 팔자타령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팔자를 울면서 맞지 말고 기쁨으로 맞이하여 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불평불만에는 행복이 없는 것이요, 만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동네에 이북에서 피난 온 부부가 동네의 한 모퉁이에 한 칸의 방을 마련하여 살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들은 두 사람이 누우면 딱 맞는 그런 방에서 살면서도, 그것을 고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행복으로 알고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대상이 되고, 또 할아버지를 보면 '할아버지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기분은 어떠하십니까? 그러면 내일도 편안하십시오' 이러면서 언제나 싱글벙글 웃고 산다면 그 동네의 화제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는 무관심하게 지내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못사는 사람, 불행한 사람이 와서 의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네 부부는 무엇이 그렇게 좋길래 매일 싱글벙글 웃고 사느냐고 물어 볼 것입니다. 그때 '불평과 불만 가운데는 행복과 만족이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가운데 천국이 벌어지고 감사하는 마음 가운데 모든 것이 성사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웃으며 살기로 한 것입니다'라고 하면 그 사람도 맞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길이 내 앞에 다가온다 하더라도 감사하게 맞아야 합니다. 내가 열 번 죽어야 하는데 이 한번으로서 넘어 갈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열번 죽을 길을 이 한번으로써 탕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 문선생은 감옥에 참 많이 갔다 왔습니다. 일본놈의 감옥으로부터 공산당의 감옥에까지 구경을 안한 데가 없습니다. 감옥에 대해서는 전문가입니다. (웃음) 그리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면 거기서 내가 기합도 줄 줄 아는 것입니다. 일본놈들에게는 이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하여 다시 못 오게 기합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을 잡으면 반드시 기합을 줄 것입니다. (잠시 녹음이 중단되었음)

전진하는 데 있어서 기성교회가 아무리 반대를 하고 핍박을 해도 낙심이나 후퇴할 우리 통일교인들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렇게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이 참 재미있었고 극적인 장면과 스릴도 많았다는 것입니다. 친한 친구지간에도 장난을 해야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점잔빼고 앉아서 고리타분한 얘기나 하면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간간이 신선한 자극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30세 전에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내 손에 걸리는 날에는 죽도록 고생만 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고생하는 것이 싫으면 들어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목사 가방이나 들어 주는 시시한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여기 처음 왔지만 선생님은 잔칫집에서 초대하는 것을 제일 기분 나쁘게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남에게 신세를 지우는 잔치를 해서 오라고 초대하면 했지 잔칫집에서 초대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여러분도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신세를 지게 해야 합니다. 알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