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집: 세계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맞아야 할 한국 1960년 06월 12일, 한국 전본부교회 Page #286 Search Speeches

최후의 문제" 심정

선한 것은 무엇이고 악한 것은 무엇이뇨? 선한 것을 간단히 말하면 처음과 나중이 같은 것입니다. 선한 것은 처음과 나중이 같습니다. 억천만년이 가더라도 같은 것이 선입니다. 진리가 그렇습니다. 한번 출발하면 억천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같아야 합니다.

반면에 악한 것은 변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건 어떠한 주의건, 혹은 어떠한 사조나 종교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안 됩니다. 심정세계에서 변천과 발전이 없는 한 절대로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외적인 생활환경은 아무리 변해도 심정의 세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심정세계에 발전이 없습니다. 인간은 인연과 동기가 연결된 사정을 중심삼고 심정에 엉클어져 있기 때문에, 내가 이 나라의 백성이면 애국심을 갖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부모를 가졌으면 그 부모를 심정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가 그냥 그대로 이렇게 나간다면 하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가서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뇨? 종교도 의식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그저 교회나 왔다갔다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또 물질에 좌우되는 종교여서도 안 됩니다. 돈이나 갖다 주면 기도를 해주고 염불이나 해주는 그런 종교여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잘났다고 해서 이러고 저러고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도(道)로서 갖추어야 할 최후의 것은 무엇이뇨. 심정입니다. 심정.

세계가 종단(終端)으로 치닫는 이 시대에 우리 한국 백성도 맨 끝에 와 있습니다. 더 가질래야 가질 수 없고, 더 바라볼래야 바라볼 수 없는 끝에 와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환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최후에는 종교의 탈을 쓰고 또는 어떠한 이념이나 주의의 탈을 쓰고는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없습니다. 어떤 주의를 가지고는 못 나타납니다. 어떠한 종교의 이름만 가지고는 못 나타나요. 무엇을 가지고 나타나야 되느냐? 심정을 갖고 나타나야 됩니다. 자기가 믿는 도주(道主)이상의 사무친 심정을 갖고 하나님을 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끝날에 있을 도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이 도를 심판하게 될 때, '네가 몇 년 믿었느냐? 교회를 몇 개나 세우고, 법당을 몇 개나 세웠느냐?'고 하시지 않습니다. 몇 천 개든, 몇 만 개든 그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최후의 문제는 심정입니다.

천상의 독생자인 예수께서 만민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와서 도를 펴시던 애달픈 심정, 만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죽어가면서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던 심정, 그런 심정을 가진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도를 믿어 복을 받고 내 아들딸이 잘 살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러한 도가 아닙니다.

끝날에 처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되겠습니다. 믿을 자가 누구입니까? 없습니다. 바라볼 자가 누구입니까? 없습니다. 소망을 가질만한 아무것도 없습니다. 믿을 만한 종교도 없고, 소망을 가질 주의나 사상도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더우기나 우리 한국 백성은 세계의 수많은 민족보다 더 믿을 것이 없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보이는 한국의 실정입니다.

현실의 모든 사정과 환경, 정세를 보게 될 때에 한국은 딱한 사정에 처해있으며 악조건 가운데 처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늘의 크나큰 섭리가 있습니다. 이때 하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은 이제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단결하는 데는 세상에 있는 어떤 종교를 중심삼고 단결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어떠한 사회단체를 중심삼고 단결할 때도 지나갔습니다. 다 지나갔습니다. 공산주의도 아니요, 민주주의도 아니요, 어떠한 교파도 아닙니다. 세계적이요, 천주적인 새로운 이념이 이 땅 위에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이 민족은 단결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