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7집: 다들 어디로 갈 것이냐 1987년 07월 14일, 미국 알래스카 코디악 Page #160 Search Speeches

참의 절대적 기준

이 세상이 인간만으로 모든 역사가 엮어지는 세상이라면 그야말로 처량하고 비참하고 암담한 역사의 종결을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는 그런 종결을 맞이하지 않겠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불가피적으로 맞아야만 됩니다. 결정적인 입장에서 맞이하지 않을 수 없는 숙명적인 과정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운명은 타개할 수 있지만 숙명은 타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무개 집 아들로 태어난 것을 타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건 변경시킬 수 없어요. 숙명적인 인간의 길, 이것을 누가 타개해 주느냐? 인간만으로 엮어 가고 인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사과정이라면 과정 자체가 아무리 좋았다 하더라도 비참에서 시작됐으니, 비참에서 살다 비참으로 종결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만약에 신이 있다면…. 이것은 언제나 철학이면 철학, 근본철학에 들어가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신이 있다면 어떠할 것이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인격적인 신이어야 됩니다. 지정의를 갖춘 인격적 신이라면,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의 인격적 신이라면, 그 신이 목적하고 신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일 것이냐? 신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신의 뜻을 이루는 것이 신 혼자서 이룰 수 있느냐? 뜻이라는 말은 혼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뜻이 맞는다, 뜻이라는 글자 자체가 벌써 그렇잖아요? 설 립(立) 자 아래에 가로 왈(曰)하고 마음 심(心)이예요. 말을 세우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벌써 상대적 관계를 말합니다. 뜻이라는 말은 혼자 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 신이 있어서 그 신이 원하는 뜻이 있다면, 신은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이 마음대로 가긴 갈 텐데, 자유자재로 갈텐데 그냥 마음대로 무질서하게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신을 중심삼은 어떤 상대관계에서 그 두 관계가 일치되고, 그 관계가 이상적인 기준이 아니면 안 됩니다. 이러한 추리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신이 추구하는 목적, 신이 가고자 하는 종착점이 어디일 것이냐? 그건 간단히 말하면 참된 사람을 만나서 참된 사람들의 가정, 참된 나라, 참된 세계를 이루어 사람들이 평화스럽게 사는 그런 곳이 아니겠느냐.

그럼 신이 바라는 참된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이게 문제가 됩니다. 학자님들이 남이 해득하기 어려운 책을 읽어 가면서 문구문구를 해석하고 그걸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신의 참된 뜻과 얼마만큼 관계를 갖고 있느냐? 이거 심각한 문제입니다.

신은 어디로 갈 것이냐? 현세에 와서는 '신은 다 죽었다. 죽은 신이 갈 곳도 없고, 뭐 신이라는 명사도 필요없다'고 결론을 지어 헌신짝같이 다 내버렸습니다. 그러고 난 현세에 있어서는 가치관이 몰락됐어요. 절대 선의 가치기준을 세울 수 있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이거예요. 절대 기준을 세우지 못하니, 상대적 가치기준을 찾아서 절대에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이나마 상실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신을 잃어버렸으니….

여러분, 그렇잖아요? 레버런 문이 뭐 어떻고 어떻고 해도 다 그런 사람이 아녜요? 만나 보면 뭐 별것 있어요? 밥 먹고 자고 뭐 같지요. 그가 주장하는 것이 다른 게 뭐야? 나와 그와 마찬가지지. 다 마찬가지 입니다. 마찬가지인데 무엇을 중심삼고 마찬가지냐? 참을 중심삼고는 마찬가지가 아닙니다. 참은 과거 사람에게 있어서도 참, 현재 사람에게 있어서도 참, 미래 사람에게 있어서도 참이고, 인간뿐만이 아니라 신이있다면 신이 보기에도 참이라고 할 수 있어야 돼요. 그것은 국경도 인종도 초월하고, 유무세계의 한계선도 초월하고, 그 다음엔 귀천의 차, 빈부의 차도 극복하고, 지금 분립돼 있는 동서양의 문화배경도 다 극복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참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참이란 것이 무엇이냐? 내가 아무리 지금 이 시대에 있어서 뭐 어떻고 뭘하고 하더라도, 그것이 역사시대의 참과 미래세계에 있어서의 참과 연결된 참의 내용을 그려 가면서 만들어 가고 있느냐? 그러지 못하게 될 때는 이 움직인 것이 차후에 가 가지고는 반드시 파탄이 벌어져요. 아무리 시작이 좋았고 아무리 과정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끝에 가서는 파탄이 벌어집니다. 참에 미달할 때는 참 앞에 존립할 수 없어요. 이렇게 보게 될 때 심각합니다.

제일 문제가 뭐냐? 세계를 아는 것보다…. 세계를 알려고 하면 간단한 겁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공부하면 대충 알 수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게 되면 사상적인 모든 것을 대충 알 수 있습니다. 노력하면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노력해서도 알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여러분의 마음을 알아요? 마음을 가지고서 별의별 놀음을 하고, 별의별 출세를 하고, 별의별 지식을 다 탐구해 나왔지만 마음이 뭐냐 할 때, 대답할 자신이 있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손을 댈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근본적인 것이 많잖아요, 보이지 않는 것에.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인데 마음은 직접적으로 나의 일일생활과 관계 됩니다. 생각, 행동, 호흡하는 모든 것까지도 마음의 인연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음을 모릅니다. 이놈의 마음이…. '인심(人心)은 조석변(朝夕變)이요, 산색(山色)은 고금동(古今同)' 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자, 이런 인간, 이 인간을 가지고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냐? 교육을 해서 참된 인간이 되라고 하지만, 참의 정의가 뭐냐? 심각한 문제입니다. 누구를 표준해서 참이냐? 미터면 미터의 원기(原器)가 있어 가지고 딱 해보면 가짜인지 아닌지 반드시 판결이 나는데, 참이라는 것의 절대적 기준이 어디 있느냐 이거예요. 이게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20세기의 혼란된 세계에 있어서 미래의 종착점이 암담한 세계를 앞에 놓은 현세계에 있어서 참의 기준…. 여러분 교수님들, 어깨에 힘을 주고 '내로라' 이러지요? 우리 같은 사람도 어깨에 힘주라면 잘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린 그런 거 안 합니다. 할 일이 너무 많아요. 힘줄 사이가 없습니다. 힘주고 뭐 (웃음) 그럴 사이가 없다구요. 내가 높고 네가 낮고 그럴 사이가 없습니다. 왜? 참에 도달하려니….